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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는 문송면·원진 노동자, 함께 걷는 황유미 ③] 노동자 죽음의 행진 이제는 끝내야 한다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온도계 생산공장에서 일하던 문송면군은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 인조비단을 만들던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온몸이 마비되고 머리가 깨지는 듯한 고통 속에 죽어 갔다. 이들 모두 제대로 된 보호장비도 없이 일하다가 직업병에 걸렸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기까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2018년에도 반도체공장에서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 가는 노동자들이 산재보상을 위해 10년 가까이 싸우고 있다. 입사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23세 청년노동자는 청산가리의 기체형태인 시안화합물을 바가지로 퍼 옮기다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 30년간 노동자의 일터는 얼마나 안전하고 건강해졌나.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가 노동안전보건의 역사와 현실을 고민하는 글을 보내왔다.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시초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의 안전보건 10개 조항이다. 63년 산재보험법이 먼저 제정됐고, 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독립해 별도 법령으로 만들어졌다. 산업안전보건법은 90년 처음으로 전부개정됐다. 88년 문송면·원진레이온 산재 투쟁 결과다. 14개 조항이 개정됐는데, 주요 내용은 △산업안전에 대한 정부 책무 △노동자 대표의 안전보건조치 결과 사업주 요청권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정기적인 안전보건교육 실시 △유해화학물질 규제와 건강관리수첩 제도 도입 △산재예방기금 설치·운영이다.

이후 28년이 지났다. 그사이 △하청 산재에 대한 원청 책임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제공 △위험성평가제도 도입 △근로자건강센터 설치 △산재은폐 형사처벌 같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있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역사에는 노동자의 고통과 억울한 죽음, 그리고 투쟁이 서려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전개된 근골격계질환 집단산재 투쟁으로 도입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제도가 그렇다. 2009년부터 청소노동자의 씻을 권리 보장투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원청의 위생시설 제공과 보장이 의무화됐다. 울산을 비롯해 전국에서 산재은폐 고발 투쟁이 잇따르면서 고의적 산재은폐 형사처벌 제도가 도입됐다. 서비스연맹을 중심으로 10년 가까이 감정노동 문제를 제기해 올해 감정노동 예방의무제가 신설됐다.

문송면·원진레이온 30주기 사업을 하면서 당시 온몸을 던져 싸웠던 유족과 산재 피해자, 선배 활동가들을 자주 만났다. 그들이 하나같이 놀란 점이 있는데 지금도 계속되는 노동자 죽음의 행진이다. 30년 전 원성이 높았던 산재신청서 사업주 날인제도는 30년 동안 사실상 유지되다 올해 들어서야 법적·행정적으로 완전 폐지됐다. 원진레이온에서는 산재 인정을 요구하며 137일간 장례투쟁을 했는데 지금도 직업병을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싸워야 한다. 30년 전 사업장 안전교육 실시가 의무화되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노동자 참여가 보장됐다. 그런데도 올해 지방자치단체 청소노동자들은 안전교육 실시와 산업안전보건위 구성을 요구하며 이를 지키지 않는 243개 지자체를 고발해야 했다. 학교급식 노동자를 비롯한 학교비정규직은 1년6개월째 교육청과 교육부를 오가며 안전교육과 산업안전보건위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위험성평가제도 노동자 참여보장과 공정안전보고서의 산업안전보건위 심의 보장을 요구하며 수개월간 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30년 동안 달라진 고용과 산업구조를 반영하지 못하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재예방정책 탓에 안전보건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있다. 법 적용을 받는 현장도 여기저기 구멍이 많아 실질적인 이행이 담보되지 않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산재보상 통계만 봐도 매년 2천400여명이 산재로 사망한다. 그중 370명은 과로사로 목숨을 잃는다. 문송면·원진레이온 투쟁 30년이 지난 2018년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이다.

문송면·원진레이온 30주기인 올해 아이러니하게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 다각화된 고용형태에 따른 사업주 의무가 강화되고 △산재사망 형사처벌 하한선 도입 △건설업 산재 발주처 책임 △원청의 예방의무 적용범위 확대 △물질안전보건자료 보고의무와 영업비밀 남용 제한 △중대재해 작업중지 명령제도 등이 담겼다.

28년 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라고 하기에는 과로사나 정신건강·보건관리·노동자 참여 등 안전보건 과제가 너무 많이 빠져 있다. 답답하고 개탄스러운 것은 이렇게 부족한 법안조차도 막고 있는 사용자단체와 경제부처 그리고 보수적인 전문가들이다. 전경련과 한국경총·대한건설협회 등 사용주단체들은 산재예방보상 관련 법과 제도가 '규제'라며 완화를 요구하고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에 반대한다. 산재사망기업 처벌강화법안은 18대와 19대 국회를 표류하다 폐기됐다. 하청 노동자 산재가 확산되고 구의역 참사로 청년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일까지 있었지만, 도급금지와 원청 책임강화 법안은 위헌을 거론하는 사용자단체에 가로막혀 진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까지 영업비밀을 넘어 국가기밀로 둔갑시키는 삼성과 보수언론·경제부처의 합동작전이 벌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30년 전 문송면과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고통이 2018년 하청·이주·파견·특수고용·현장실습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송면이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이제는 정말 끝내야 한다.

최명선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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