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고 문송면군 수은중독 사망과 원진레이온 사태 뒤 직업병을 다룰 전문의가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필요로 탄생했다. 태생부터 노동자 곁에 있는 의사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라는 모임이 있다. 의사들이 진료실에서 하는 진단과 치료에 머물지 않고 노동과정과 일터 환경, 일터 건강을 지키겠다며 만든 모임이다. 문송면군 산재사망 30주년을 맞아 지금도 이어지는 노동현장 직업병 문제를 알리겠다며 의사회 회원들이 글을 보내왔다.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한 여성과 그녀의 딸이 개원가에서 흔히 시행하는 중금속 모발검사를 한 뒤 납 수치가 높다는 얘기를 듣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았다. 약물치료를 요망하는 정도의 상태는 아니었으나 상당히 높은 수준이어서 노출원인을 찾아낼 필요가 있었다. 진료 과정에서 그녀의 남편이 폐배터리를 수거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중금속 모발검사에서 남편의 납 수치가 가장 높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음 외래에 함께 온 남편의 혈중 납 농도는 데시리터당 100마이크로그램(㎍/㎗)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전혀 불편함이나 특이 증상 없이 지내 왔다고 했다. 여느 사람들의 20배가 넘는 혈중 납 농도였고, 납 뇌병증이나 최소한 복통은 호소할 것 같은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해당 환자는 증상이 전혀 없었다. 의료진은 검사 오류를 고려해 재차 검사를 했고 역시 혈중 납 농도는 100마이크로그램 이상으로 보고됐다.

그는 지방에서 고철과 전자기기 수거를 하다 2010년부터 폐배터리를 수거하는 일을 시작했다. 폐차장·카센터·배터리 판매점·빌딩 비상발전기 등에서 납 배터리를 수거해 재처리공장으로 가져다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계약된 폐배터리 발생지를 주기적으로 들러 수거한 뒤 집 마당에 비치하고 20톤가량이 모이면 재활용공장으로 운송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환자를 입원시켜 혈중 납을 배출하는 치료를 했다. 작업장 내부에서 마스크·작업복·내화학장갑 등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점, 작업복 보관함을 주택 내부에 둬서 분진이 집안으로 유입될 수 있는 점, 손 씻기 등 개인위생을 전혀 지키지 않아 납에 많이 노출될 수 있는 점을 확인하고 개선하라고 지도했다.

기술 고도화로 폐배터리의 55% 이상이 재활용 가능하다. 주로 항공·자동차용 시동 배터리나 중대형 무정전 전원공급장치, 전기·통신선 피복제로 활용된다. 우리는 자원 재활용이라는 문구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두 눈으로 목격했다. 2013년 국내에서 재활용 납은 약 20만톤 생산됐다. 이 재처리공장들로 폐배터리를 운반하는 사람들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될 것인가.

2018년 현재 한국의 산업안전보건 활동은 작업환경 측정과 근로자건강진단·산업보건의(유명무실해졌지만)·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산업재해보상보험을 통해 ‘사업장’ 단위에서 이뤄지고 있다. 반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산업안전보건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시대 흐름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귀찮고 위험한 일을 ‘효율성’과 ‘유연성’의 기조 아래 파견노동자 또는 위탁업체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학습지교사나 택배노동자들에 한정돼 있던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플랫폼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더 이상 ‘특수’한 형태가 아닌 일반적인 노동형태가 돼 가고 있다. 노동형태는 자본의 압력 아래 급변하고 있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먹고사는 문제와 연관 지을 때에는 손을 놓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생계 문제를 최우선하며 다른 대안 없이 일을 그만둘 수 없었던, 우리가 만난 그 환자는 본인 건강을 염려하기보다 일터를 방문한 우리들이 환경부에 신고해 큰 벌금을 물고 더 이상 일을 하게 될 수 없을까 봐 걱정했다.

고 문송면군이 목숨을 잃은 지 30년이 됐다. 야학에 다니며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로 여러 곳을 전전하다 일터에서 수은중독으로 아프게 된 것을 알게 됐다. 우리가 만난 환자에게서 30년 전 그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우리 시대는 한 세대를 지나오며 청년은 중년이 되고 도시의 풍경, 공업의 풍경, 생계의 풍경, 노동의 형태 등 많은 것이 바뀌어 왔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 제도는 그 세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지난 시대에 발을 붙이고 서서 손만 허우적대고 있다. 우리는 일하면서 아프지 않는 세상을 바랄 수 없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앗아 가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울부짖어도, 그 작은 바람을 이뤄 주지 못하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