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최저임금법 개정 뒤 사회적 대화는 얼어붙었다. 혹한과 혹서를 오갔던 분위가 최근 조금씩 바뀌고 있다.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과 양대 노총 위원장이 만나면서다. 한국노총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책협의 뒤 한 달 만에 사회적 대화 복귀를 선언했고, 민주노총은 고용노동부와 노정협의를 재개했다. 완전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최저임금위원회를 볼 가능성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대화 주체들은 사회적 대화의 조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회적 대화로 저임금 노동자의 희망 최저임금 지켜야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

한국노총은 국회가 일방적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조항까지 개악했을 때 사상 최초로 청와대 앞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투쟁을 결의했다. 마지막 희망인 대통령 거부권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노숙투쟁과 집회도 했다. 그리고 최저임금위원 사퇴라는 강경대응까지 했다. 하지만 상황변화는 없었다. 최저임금 논의시한은 다가오는데 마냥 최저임금위에 불참하는 것도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최저임금위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넓어질 대로 넓어진 최저임금 산입범위로 인한 저임금 노동자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제도개선과 최저임금 대폭인상이 뒷받침돼야 한다. 끝까지 최저임금위에 참여하지 않고 명분을 세우는 것이 저임금 노동자의 유일한 희망인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노동계가 불참한 가운데 최저임금위를 공익위원과 사용자단체에만 맡겨 온전한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노총이 지난달 27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열띤 토론 끝에 최저임금위 등 사회적 대화 복귀 방침을 정한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한국노총은 중집 결정에 따라 회의 직후 더불어민주당과 ‘최저임금 제도개선과 정책협약 이행 합의문’에 서명했다. 최저임금 산입임금을 통상임금으로 간주하고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 법·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합의내용이 100% 다 관철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이 있어야 한다. 한국노총은 최저임금위에 복귀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온전한 1만원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한 최저임금법이 저임금 노동자의 든든한 방패가 될 수 있도록 최저임금법 재개정 등 법·제도 개선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면담 그 다음이 문제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민주노총 위원장이 임기 이후 6개월 만에 문재인 대통령을 두 번 만났다. 민주노총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다. 대통령은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 방향은 흔들림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6·13 지방선거 이후 개혁에 더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 의지도 분명히 밝혔다. 전향적이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졌다. 민주노총이 이번 최저임금법 재개정 투쟁을 하면서 요구했던 첫 번째 요구가 해결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면담이 면담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부와 여당에서 관련한 구체적 이행계획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그 다음은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탄력근로제 확대 시행 등 계속해서 친기업 반노동적 발언만 쏟아 내고 있다.

사회적 대화 적극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고 조합원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김명환 집행부가 스스로 사회적 대화를 걷어차고 밖에서 투쟁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끝나지 않으면 노동존중 사회, 소득주도 성장, 경제민주화가 과연 어떤 동력으로 가능할까? 정부 여당은 민주노총에서 묻지마 사회적 대화 복귀와 위원장 결단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정부 스스로가 민주노총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불가역적으로 사회적 대화에 참가’(CVIP) 할 수 있는 구조와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국민 지지율 80%인 문재인 정부에서 왜 촛불혁명 이후 최대 규모라는 8만명의 노동자가 광화문에 모였는지, 그들이 무엇에 분노했는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그 배경을 분명하게 직시해야 한다. 여기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때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는 문재인 정부는 한순간에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실패한 노정관계의 전철을 되밟을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은 줬다 뺏는 최저임금법,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특례조항 포함한 개악안 재개정과 ILO 협약 비준과 관련 노동법 개정,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 노동적폐 청산, 산별교섭 활성화 대책, 모범 사용자로서 노정교섭 적극 추진 등을 포함한 노동현안 요구를 해결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지와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노사 신뢰 쌓은 뒤 일자리 창출부터 논의하자
김영완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김영완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지난 5월28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5기 사회적 대화기구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민주노총의 불참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틀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 시점에서 사회적 대화를 왜 하는지,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지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타결했다. 해외의 대다수 사회협약 또한 사회·경제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이뤄졌다. 사회적 대화는 노사가 서로를 이해하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자리일 때 성공할 수 있다. 특히 노사 모두가 공감하는 공동의 목표하에 자연스럽게 도출된 희생과 양보가 있었다.

우리의 사회적 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노사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견이 큰 주제를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신뢰도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내용을 다룬다면 자칫 대화의 장이 아닌 갈등의 장이 돼 버릴 수 있다.

지금 우리 경제·사회의 위기의식은 저성장과 심각한 청년실업 등 일자리 문제에서 나왔다. 우선 새로운 대화기구의 틀에서 노사가 신뢰를 쌓아 가고, 노사가 공감하는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잡아야 한다.

현안 해결하고 갈등 줄이는 사회적 대화 필요
오영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외협력실장

오영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외협력실장

사회적 대화를 ‘잠시’ 멈춰 세운 최저임금법 개정 사태에 대해 노동계도 경영계도 결이 유사한 지적을 한다. 최저임금과 고용률 문제, 저소득 계층의 소득문제가 단순히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만은 아니며 산입범위 논의와 함께 사회안전망, 저임금 노동자 지원대책, 중소기업·소상공인 지불능력 제고방안이 종합적으로 논의됐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종합적인 검토와 대책 마련의 기회는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논의를 통해서 가질 수 있었는데 이것이 성사되지 않아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도 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사회적 대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산적한 노동 현안의 근본적인 해법을 가장 합리적인, 또 엄청난 갈등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바로 ‘사회적 대화’라는 것을.

노사정이 당초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산업구조 변화(경제의 디지털화), 양질의 일자리 창출, 양극화 해소, 노동기본권, 사회안전망과 산업안전 같은 문제들이다. 최저임금 못지않은 시급하고 중요한 이런 현안들 중에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그 책임과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있나. 아마 없을 것이다. 사회적 대화의 의미와 가치를 온전히 가져올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지금’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최근 그런 사회적 대화의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법 전부개정이다. 노·사가 중심이 돼 진지하게 논의했고 정부가 동의했다. 그 결과를 우리 국회도 존중했다. 머릿속에서 사회적 대화 따로, 법률을 비롯한 후속대책 따로 식의 구조화된 사고방식을 지우는 것. 이것은 우리의 대화가 성공으로 가기 위한 ‘조건’이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최저임금·임금체계·구조조정 등 첨예하고 복잡한 쟁점은 단기간 해결이 어렵다. 중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다룰 사안이다. 그래야 갈등이 최소화된다. 사회적 대화는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최우선 순위다. 사회적 대화가 어렵게 복원됐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노사정 공동의 책임이며 상대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우선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온 게 사실이다. 솔직히 복리후생수당을 포함시킨 것은 너무 치명적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이 최저임금법 재개정을 포함한 합당한 보완대책을 약속해야 한다. 이를 전제로 사회적 대화가 이뤄지지 못하면 공동의 실패가 뒤따른다. 참여정부처럼 노정갈등으로 시작해 공멸하는 어리석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민주노총의 고충을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적 대화 공약을 내걸고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김명환 집행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촛불항쟁 이후 노동존중 사회 공약을 내걸고 집권한 문재인 정부와 노정협상 단계에서 사회적 대화 공약 정신대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를 두고 노사정 모두 심판자가 아닌 플레이어로서 제몫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위원회 복귀 여부가 관건이다. 최저임금은 조직 노동자 임금을 위한 게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 임금을 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저임금위 전술적 방침도 양대 노총이 잘 공조해서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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