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이 3일 오후 서울 대한문 앞에 설치한 고 김주중 조합원 분향소에서 상복을 입고 앉아 있다. <정기훈 기자>
분향소를 지키는 상주는 내내 말이 없었다. 눈빛은 멍했다. 절을 하고 향을 피우는 시민들을 꿈속인 듯 바라봤다. 반복되는 죽음이 현실감을 앗아 간 듯했다. 두 팔 가득 조합원 영정을 끌어안고 있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분향소를 향해 의자를 던지고 욕설을 내뱉었다. 한낮의 뙤약볕이 내리쬐고 번잡했지만 영정 안 김주중(48)씨는 환하게 웃었다.

◇"정리해고·국가폭력·사법부가 저지른 살인"=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지부장 김득중)와 쌍용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원회가 3일 정오께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고인이 된 조합원 김주중씨를 추모하는 분향소를 차렸다. 고인은 지난달 27일 오후 평택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리해고를 겪고 나서 제가 사는 세상을 다시 봤습니다. 2009년 8월5일 그 옥상을 조용히 감당하며 살았습니다. 분노가 치솟으면 뛰쳐나가 소리 질렀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고인이 동료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는 경찰특공대의 ‘옥상진압’ 당시 경찰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뒤 구속·수감됐다.

고인은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과 연관해 목숨을 잃은 서른 번째 사망자다. 지부와 범대위는 분향소 설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리해고와 국가폭력, 사법부가 저지른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2009년 이명박 정권의 살인진압과 대한민국의 24억원 손배·가압류, 대법원의 재판거래로 인한 정리해고, 노사합의를 지키지 않는 사측의 행태가 김주중 동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복직시기가 약속되고 경찰조사 시기가 좀 더 빨랐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올해 5월 문재인 정부 들어 출범한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에 출석해 인터뷰를 했다. 진상조사위는 당시 강제진압에 과도한 폭력이 동원돼 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달 중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문제해결 약속한 대통령 어디 갔나요?"=문재인 정부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았다. 현장에 배포된 보도자료에는 세 장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사진 속에는 공통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가 해고노동자들의 고공농성장을 방문하고, 단식 중인 노동자를 위로하며, "힘내라! 김정욱, 이창근 응답하라 쌍차!"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김정욱 지부 사무국장과 이창근 전 지부 정책기획실장은 2014년 12월부터 쌍용차 평택공장 70미터 굴뚝에 올라 101일 동안 고공농성을 했다.

김태연 범대위 상황실장은 “쌍용차 사태 국정조사와 해결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도 1년이 지나도록 쌍용차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며 “경찰의 살인진압 진상조사가 신속히 이뤄지지 않았고, 정부의 손해배상 소송도 취하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하늘색 천막으로 해를 가린 세 평 크기의 분향소를 세웠다. 먼저 간 해고노동자들의 영정이 한데 실린 펼침막이 분향소 벽면 역할을 했다. 분향소 한쪽에는 2012년 11월3일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프린트해 만든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

지부는 그해 4월5일 22번째 희생자가 생기자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렸다. 1년 후 서울 중구청은 분향소를 강제로 철거했다. 분향소 자리에 화단을 만들었다.

두 번째 분향소가 세워지기까지 8명이 세상을 등졌다. 연주황빛 상복을 입은 김득중 지부장이 조문 온 시민들을 맞았다. 선글라스를 쓰고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몰려와 확성기로 <충정가>를 틀었다. 거친 욕설과 함께 분향소로 뛰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의자도 날아들었다. 경찰이 방해꾼을 제지했다. 소음과 위협에도 시민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오후 늦게 조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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