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폴리텍대학

4년제 대학 도시계획부동산학과를 졸업한 김아무개(29)씨는 공무원시험 3수에 실패한 뒤 한국폴리텍대 융합기술교육원 문을 두드렸다. 데이터융합SW과에 입학한 김씨는 10개월 교육과정을 마치고 전문프로그래머가 돼 공정 자동화시스템 전문기업에 당당히 취업했다.

4년제 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이아무개(26)씨는 이른바 '문송(문과라서 죄송)' 취업준비생 시절을 보내다 폴리텍대 융합기술교육원 생명의료시스템과에 입학했다. 이씨는 10개월 교육을 받고 바이오QA전문가가 됐다. 건강기능식품 마케팅 전문컨설팅 회사에 입사했다.

지금까지 직업훈련교육과 '확' 다른
융합기술교육원 '하이테크과정'


학력 인플레이션에 따른 고학력 청년 실업난이 심각한 가운데 폴리텍대 융합기술교육원의 고학력 미취업자 대상 하이테크과정이 주목받고 있다.

2016년 설립된 융합기술교육원은 4년제 대학 이상 고학력자를 대상으로 고급 직업교육과정인 '하이테크과정'을 개설·운영 중이다. 4차 산업혁명 분야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현재 데이터융합SW과·임베디드시스템과·생명의료시스템과 등 3개 학과가 있다.

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1소회의실에서 열린 '고학력 미취업자 공공직업훈련의 성과와 과제' 포럼에서 융합기술교육원 같은 고급 직업교육훈련 플랫폼을 확대해 고학력 미취업자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랐다. 이날 포럼은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과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함께 주최했다.

강구홍 원장이 설명한 융합기술교육원 하이테크과정은 다른 대학원 과정과 확연히 다른 커리큘럼이 눈길을 끈다. 교육과정은 기초·심화·특화과정으로 구분되는 '단계별 모듈형태'로 진행된다. 400시간 기초과정에서 비전공자의 적응력을 높이고 교육진도를 맞춘다. 주당 40시간 내외의 밀도 높은 교육으로 대학원에서 2년 걸리는 교육과정을 10개월로 단축했다.

융합기술교육원은 기존 직업훈련교육과 달리 학사운영을 엄격하게 한다. 학생들은 각 단계 모듈과정별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과정에서 탈락한다. 강 원장은 "그동안 직업교육에서 중간에 학생들을 탈락시키는 경우는 없었다"며 "매주 과제 평가를 하고, 종합시험을 통해 일정 수준이 안되면 탈락시켜 학생들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고, 기업에는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인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업 프로젝트 과제도 특별하다. 학생들이 모듈과정의 마지막인 특화과정을 이수하려면 기업체와 공동으로 개발한 프로젝트과제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결과물은 포트폴리오로 제작해 취업에 활용한다. 강 원장은 "포트폴리오를 본 기업은 이 학생이 어떤 장비와 프로그램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하고 분석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데려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것은 블라인드 채용이다. 융합기술교육원은 기업에 학생을 추천할 때 나이·성별·학력·전공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기업은 오로지 학생이 수행한 포트폴리오에 대한 검토와 면접을 통해 실력을 검증한다. 실제 한 기업에서는 다른 대학 석사 취득자를 탈락시키고 융합기술교육원 학생을 채용했다.

융합기술교육원 관계자는 "하이테크과정은 신산업과 고학력 청년실업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훈련 플랫폼"이라며 "다른 대학들과 협업해 공공직업교육 성과를 민간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학력·고스펙 청년실업, 수요자 눈높이 맞춰야"

이날 포럼에 참석한 조현보 포항공대 교수(산업경영공학)는 "고학력 미취업자 중심의 직업교육훈련 플랫폼은 시의적절한 시도"라며 "플랫폼 콘텐츠를 얼마나 신속하고 풍부하게 채우는지가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고재성 한국고용정보원 청년정책허브지원단 단장은 "양질의 교육훈련에도 적절한 취업지원이 없어 취업까지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취업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폴리텍대의 진로·취업지원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석행 폴리텍대 이사장은 "청년실업은 고학력·고스펙 특징을 보인다"며 "수요자 눈높이를 맞추고 미래 고부가가치산업 분야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 가장 실효성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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