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올해 5월 경기도 성남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게 돼 팀원들과 현장에 갔어요. 저와 세 살 어린 동료만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였죠. 분명 건강진단에서 이상이 없었고 지난해 다른 현장에서도 일했는데, 보건관리자는 ‘나이가 많으니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40년 넘게 일한 건설현장에서 동료들만 남겨 둔 채 발걸음을 옮기려니 기가 막히고 비참해 눈물이 났습니다.”

김연수(68·가명)씨는 스물세 살부터 건설현장에서 목수 일을 했다. 술 담배도 하지 않고 그 흔한 고혈압도 없었다. 한평생 몸 쓰는 일을 해서인지 잔병치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대형 건설현장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건강진단을 요구받다 결국 채용거부를 당했다. 김씨는 24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대형 건설현장에서 유독 나이로 채용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장마다 다르지만 보통 65세를 기준으로 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목수는 팀으로 움직인다. 10~15명 정도가 한 팀이다. 김씨는 지난해 위례신도시의 한 건설현장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동료 2명과 함께 건강진단을 요구받았다. 65세가 넘은 사람들이었다. 당시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다는 확인을 받은 후에야 김씨와 동료들은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보건관리자 작업환경 개선 역할 망각

공사금액 800억원·상시노동자 600명 이상인 건설현장은 보건관리자를 선임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사업장 보건관리와 작업환경 개선업무를 하는 보건관리자가 채용 전 건강진단에만 신경 쓰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건설사가 안전강화 명목으로 혈압·혈액·엑스레이 검사 등 채용 전 건강진단을 하면서 채용차별을 당하는 건설노동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박우철 건설노조 경기도건설지부 사무국장은 “병원 건강진단에서 정상 판정을 받은 노동자에게 보건관리자가 ‘믿을 수 없다’며 현장에서 다시 혈압을 재는 경우도 있다”며 “보건관리자 앞에서 긴장한 노동자의 혈압이 일시적으로 올라 일을 못하게 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일부 현장에서는 장력 테스트를 이유로 철봉을 설치해 매달려 보라고 시키기도 한다. 박종국 경실련 시민안전센터 대표는 “비전문적인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걸러 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건관리자는 폭염·한파가 지속되거나 미세먼지가 많은 날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노동자들에게 휴게시간을 보장하는 등 작업환경 개선 노력을 해야 한다”며 “채용 전 건강진단으로 노동자를 걸러 내는 엉뚱한 역할만 할 바에야 없는 게 낫다”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혈압이 높다, 당뇨가 있다는 이유로 채용을 거부하면서 30년 경력 노동자가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젊은 이주노동자 말고는 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건설노동자 평균 연령은 56~57세다. 청년층 유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건설현장 특성상 고령의 베테랑 노동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나이와 간단한 건강검진만으로 채용 차별을 하는 것은 업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더군다나 산업안전보건법은 채용 후 직무배치 전 특수건강진단만을 허용하고 있지만 플랜트 건설현장에서는 불법인 취업 전 특수건강진단을 노동자들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잦다.

특수건강진단 결과 해고사유로 돌변하기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화학물질이나 소음·분진 같은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노동자가 있는 사업장은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을 하고 결과를 고용노동부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를 작업장 유해인자에서 보호하고 노동자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실시하는 특수건강진단을 외려 노동자들이 꺼리기도 한다. 특수건강진단 결과가 사업주에게 통보되기 때문이다. 진단 결과 혹여 이상 증상이 발견되면 일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08년 펴낸 ‘건설업 근로자 직종별 건강진단 방안연구’에 따르면 건설업체 안전관리자 15명 중 13명이 “특수건강진단이 필요하다”면서도 “진단 결과로 인해 고용상 불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승현 노조 정책국장은 “특수건강진단 결과를 사업주에게 통보하는 이유는 작업환경을 개선하라는 것인데 진단 결과 때문에 해고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노동자는 여러 현장을 이동하며 일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특수건강진단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수건강진단을 유해인자에 따라 6개월에서 2년에 한 번 실시하다 보니 건강진단은 검사가 있는 날 출근한 노동자에 한해 이뤄진다. 게다가 이동이 잦으니 어떤 현장에서 어떤 유해인자에 노출됐는지 추적하기도 쉽지 않다. 건설노동자 건강진단제도를 직업맞춤형 예방체계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국장은 “건설현장에서 사용되는 수많은 유해인자를 보건관리자나 안전관리자가 다 알 수는 없다”며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 후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노동부 보고를 위한 검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업장 기반으로 수검자 선정·비용 부담·건강진단과 사후관리가 이뤄지는 현행 제도로는 건설노동자 보건관리에 한계가 있다”며 “사업장 이동이 잦고 일시적인 휴업상태가 자주 발생하는 건설산업 특성을 고려해 노동자 건강진단과 사후관리·업무적합성 평가를 사업주가 아닌 건설근로자공제회나 독립된 기관이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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