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비정규직은 사용자를 위해 쓰고 버려진다. 정치권이 정권창출을 위해 표를 구할 때도 그렇다.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인 시대다. 인기를 얻고 정의를 흉내 내기에 비정규직만 한 게 없다. 그리고 다시 버려진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 이후 모든 정권은 비정규직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공공부문 모범사용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도 비슷한 전철을 밟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1년 사이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비정규직은 때론 정규직의 노동조건을 지키는 방패막이로 쓰인다.

조돈문(64·사진)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세상에 이런 나라 없다"고 말했다. 피고용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인 나라, 그들의 노동조건이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한 나라에 대한 한탄이다. 조 교수는 노동계급 계급형성론을 연구하던 학자였다. 2006년 말 비정규직 관련법 제·개정 이후 비정규직 문제에 천착했다.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지금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위촉직 근로자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센터 사무실에서 조 교수를 만났다. 정부를 비롯한 사회주체들이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해 나아갈 길을 물었다.

"비정규직 규모도 노동조건도 절반, 이런 나라 없다"

-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다.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현재 비정규직이 피고용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없다. 2012년 대선과 총선부터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이 ‘비정규직 규모를 절반으로 줄인다’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을 만들자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면 사회양극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고용이 불안정해지면 개인의 삶과 가족의 삶이 불안해진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보수정당도 공감한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규모도 절반, 노동조건도 절반이다. 두 가지를 완벽하게 갖춰서 사회를 철저하게 양극화시키는 곳은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어떻게 다른가.

"공공부문 인력활용 정책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일관되게 지속됐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지침을 만들었다. 공공부문에서 핵심업무가 아닌 것을 외주화해 경영합리화를 달성하라는 것이 요지였다. 이런 관행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리 외주화 방식을 멈췄다. 비정규직 양산이 아닌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세운 것도 나아진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정책은 과거보다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직접고용 기간제 노동자를 대상으로 무기계약직 전환을 추진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간접고용 비정규직도 전환 대상에 포함시켰다. 전체적인 정규직 전환규모도 과거 정부보다 크다. 어떻게든 임기 안에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 줬다고 평가한다."

"공공기관 자회사 방식은 국민 혈세 낭비"

- 노동계는 공공기관이 자회사를 세워 고용하는 방식을 비판하는데.

"원청이 직접 고용하지 않고 자회사를 만들어 고용하면 소속된 노동자는 여전히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남는다. 민간부문에서 그런 방식을 써서 불법파견 같은 문제가 많이 드러나지 않았나. 코레일이 자회사를 많이 세웠다. 이로 인해 KTX 여승무원 문제가 10년 넘도록 해결되지 못했다. 자회사 방식은 장기 노사갈등을 유발한다. 사용자의 의무와 책임을 3자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잘못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20일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자회사 방식을 제안했다. 자회사도 시설을 갖추고 이윤을 남겨야 기관으로서 존속한다. 관리비용도 추가로 발생한다. 사회적인 낭비다.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행위다. 서울시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펼쳤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비정규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가 정규직이었다면 직접적인 작업지시와 정보공유 등으로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산업은 위험을 외주화한다. 철도나 통신 같은 망산업에서는 외주화가 위험을 낳는다. 자회사 방식은 위험을 양산하는 방식이다."

- 모범사례는 없나.

"서울산업진흥원의 정규직 전환을 꼽고 싶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정부가 말하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은 사실상 무기계약직을 의미한다. 서울산업진흥원은 동일 업무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을 하나의 직군으로 통합했다. 청소·시설관리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별도 직군을 만들어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기존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는 수당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줄여 나갈 예정이다. 기존 무기계약직은 별도 인사관리체계로 운영됐다. 서울산업진흥원은 이를 하나로 통합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모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의지가 컸다. 서울시는 지난해 4월 투자·출연기관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무기계약직은 온전한 정규직이 아니며 간접고용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판단이 담긴 정책이다. 서울산업진흥원 정규직노조가 반대하지 않았던 것도 주요한 요인이었다. 상급단체가 없는 신생노조로 알고 있다. 정규직이 반대하지 않아 서울시장의 의지가 관철될 수 있었다."

"정규직노조 태도가 결과 가른다"

- 정규직노조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사례를 들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했던 사업장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전부 상시·지속 업무를 한다. 대부분 시민들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일이다. 정규직 전환 필요성을 수치화한다면 200%를 충족한다. 그런데 30%만 정규직이 됐다. 정규직노조의 반대가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 지난해 기간제 교사가 정규직 전환 논의 의제에 오르지 못하고, 영어회화 전문강사와 스포츠강사도 당초 기대와 달리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정규직 교사들이 강력하게 반대한 데다, 전교조가 이를 제어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정규직노조가 없었더라면 30%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을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것은 개인의 물질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조가 조합원들의 이러한 요구를 그대로 받아안는 것은 스스로를 이익집단으로 국한시키는 행동이다. 민주노조라면 계급조직 정체성으로 인해 마냥 반대만 할 수는 없지 않겠나. 서울지하철공사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통합한 서울교통공사 사례를 보자. 서울도시철도공사 정규직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그다지 반대하지 않았다. 반면 서울지하철공사에서는 젊은 노동자들의 반대가 심했다. 옛 서울지하철노조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옛 서울도시철도공사노조와 함께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다. 조합원들의 노조 탈퇴를 감수했다. 이익집단을 넘어 계급 정체성을 좇은 것이다. 서울교통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상반된 결과물이 나온 이유다."

서울교통공사 노사는 올해 초 무기계약 노동자 1천288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별도 직군이 아닌 기존 정규직 직급체계에 편입시켰다.

 

정기훈 기자

-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근로자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특수고용 비정규직 보호에 200%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특수고용 비정규직 보호법제를 추진했다. 2006년 말 비정규직 관련법 제·개정을 할 때 특수고용직 보호는 추후 과제로 넘겼다. 12년이 지났는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 최근 대법원은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1994년 대법원 판례 이후 이어진 사용종속성 중심 근로자성 판단기준에 경제종속성과 조직종속성 개념을 추가한 것이다. 진일보한 판결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특수고용직 노동권 보호 법제화를 약속했다. 대법원에서 전향적 판결이 나왔으니 판례에 기초해 법 개정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 외국의 비정규직 제도는 어떤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 차별을 받는 무기계약직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다. 스웨덴에서는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이 정규직보다 오히려 낫다. 산별 단체협약에 따라 사용업체는 파견노동자들을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과 동등하게 처우해야 한다. 비파견 대기기간에는 통상임금의 90%를 지급한다. 프랑스는 노조 조직률이 8%에 불과하지만 단체협약 적용률이 100%에 육박한다. 스웨덴도 90% 수준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직접고용이든 간접고용이든 같은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산별 단체협약으로 같은 처우를 받는다. 무기계약직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가 없다."

"민간보다 적게 주면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하자고?"

-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이유는 결국 인건비 때문인데.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함께 표준임금체계를 추진하고 있다. 직무등급은 1등급에서 5등급이고, 등급별 승급단계는 1단계에서 6단계까지다. 가장 낮은 등급의 가장 낮은 단계에 해당하면 최저임금 100%를 적용한다. 가장 높은 등급의 가장 높은 단계는 최저임금의 142%다. 직무 간 임금격차를 줄인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결과적으로 임금을 하향평준화한 꼴이 돼 버린다. 민간 유사직종과 비교했더니 가장 낮은 등급의 가장 낮은 단계는 최저임금의 122%였다. 가장 높은 등급의 가장 높은 단계는 최저임금의 264%였다. 민간부문 유사직종 노동자보다 월등히 낮은 임금을 주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대로 공공부문에 적용되는 인건비·정원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

- 사회적 대화기구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어떤 논의를 해야 하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격차가 너무 크다. 퇴직금이나 사회보험을 포함하면 차이가 더 벌어진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을 크게 인상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정부와 여당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약속해 놓고 산입범위를 확대한 것은 꼼수다.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은 2%에 불과하다. 임금교섭이 없으니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단체협약 적용률을 높이겠다는 대통령의 대선공약이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가동된 후 사라졌다. 다시 추진해야 한다. 산별교섭 법제화도 필요하다."

"고용보험제 확충으로 적대관계 해소해야"

- 민간 분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권과 경제주체들의 과제가 있다면.

"정치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을 이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을 놓고 시비가 많다. 경제성장 전략을 이윤주도 성장에서 소득주도 성장으로 전환한 것은 획기적인 변화다. 소득증대가 내수시장 확대로 이어지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인건비 부담효과는 즉각 발생한다. 경제부처가 일시적인 부정적 효과를 상쇄하는 정책을 개발해 집행하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평가하는 것은 직무태만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한상공회의소가 경영계 대표로 자리 잡고 있다. 시대착오적 정경유착의 상징 전경련에 비하면 소통능력이 있다. 이제 재계도 자본의 일방적인 지배로 노동을 억압하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빨리 벗어난 나라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내수시장이 튼튼했다. 그런 나라들은 경제위기가 와도 노동계가 결사항전을 하지 않는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재취업이 잘된다. 관대한 고용보험제도가 있기 때문에 실업을 해도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받는다. 그래서 정당한 정리해고는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노동계에 고용보험제도 확충투쟁을 제안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산별교섭을 제도화하고 단체협약 적용률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부문협의회(sector council)는 노동시장 인력수급과 산업 발전은 물론 사용자측 단체교섭 파트너 형성을 위해서도 효용성이 있다. 노동계가 임금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표준임금체계 도입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대안을 제시하며 개입하지 않으면 노조가 없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정부 입장대로 임금체계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