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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존중' 흔들리는 광주형 일자리, 저임금 일자리 되나사회적 대화 삐걱대고 투자유치 급급 … 이용섭 광주시장 당선인은 모호한 태도
▲ 광주광역시

지난 19일 오전 광주광역시청에서는 광주형 일자리 협약식이 예정돼 있었다. 광주 빛그린국가산업단지에 합작 완성차 공장을 세우는 것과 관련해 현대자동차와 광주시 간 투자협약 조인식을 하는 자리였다. 윤장현 시장과 이용섭 광주시장 당선인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협약식은 전날인 18일 돌연 취소됐다. 광주시측은 “현대차와의 협상에서 세부 조율이 마무리되지 않아 연기했다”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임금 하향평준화와 고용불안을 우려해 광주공장 설립을 반대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를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런데 취소된 실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광주형 일자리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지역 노동계·전문가들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광주시가 2015년부터 추진한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빛그린산단에 자동차산업을 조성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이다. 초임연봉은 현대차 생산직의 절반 수준인 4천만원에 맞추되, 주거·교육·의료·교통 같은 복지를 강화했다. 원·하청 상생이나 노동자 경영참가 보장 같은 불평등·노사관계 개선도 추구한다.

사업 초기 가장 많이 제기된 의문은 “과연 투자할 기업이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국내 최대 완성차기업이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제동이 걸렸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투자협약 조인식 하루 전에 취소

지역 노사정이 단순히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광주형 일자리’를 강조한 이유는 그 안에 담고자 했던 가치 때문이다. 2016년 7월 출범한 사회적 대화기구 ‘더 나은 일자리위원회’는 지난해 6월 광주형 일자리 정책 4대 원칙이 담긴 기초협약을 도출했다. 4대 원칙은 △적정임금 실현 △적정 노동시간 실현 △원·하청 관계 개혁 △노사 책임경영 구현이다.

기존 완성차 공장의 임금보다는 낮더라도 적정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면서 장시간 노동은 피하자는 취지다.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를 개선하고,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기업경영 투명성 확보와 노동자 경영참여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불평등 해소와 노사관계 혁신이라는 가치까지 추구했다.

이런 내용은 광주형 일자리 조례에도 담겼다. 사업을 주도한 이들은 노조 확산과 산별 노사관계 발전이라는 그림까지 그렸다. 이런 일자리 모델을 만들기 위해 제시된 방안은 ‘사회적 대화’다. “정부 지원과 대기업 투자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 노사정과 시민단체가 광주형 일자리 가치를 공유하고 그 가치를 반영한 협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논리다.

광주시에 사회통합추진단을 설치하고 더 나은 일자리위를 만들어 광주형 일자리사업을 논의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데 현대차가 지난달 31일 광주시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한 뒤 오히려 광주형 일자리는 삐거덕거렸다.

사회적 대화 통한 일자리 창출인데
노동계 배제된 깜깜이 투자협상


현대차와 광주시 간 협상이 이어졌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일체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동안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더 나은 일자리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 광주시 전략산업본부가 중심이 된 투자유치 사업 두 축으로 전개됐다.

광주형 일자리가 추구하는 4대 의제를 투자협정에 녹이기 위해서는 양측의 조율이나 공조가 필요하다. 하지만 전략산업본부가 주도한 투자협상 내용이 광주시 사회통합추진센터 또는 더 나은 일자리위에 보고되거나 협의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더 나은 일자리위 실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해광 전남대 교수(사회학)는 “협상은 비밀리에 집약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대화기구인 더 나은 일자리위가 협상에 못 들어가고 전략산업본부가 내용조차 공유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유치 부서가 주도하는 협상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면서 사회적 대화 주체들은 광주형 일자리사업이 추구한 4대 의제가 반영되지 못한 채 투자유치만 이뤄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노동계 반발도 컸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지난 14일 광주시청을 항의방문했다. 광주지역본부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와의 협상에서 광주형 일자리 가치와 원칙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노동계는 광주형 일자리에 참여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연봉 4천만원에 훨씬 못 미친다?
“이러다간 또 하나의 동희오토”


현대차가 투자의향서를 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언론은 “4천만원짜리 반값 연봉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게 된다”고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광주형 일자리사업이 추진되면서 연봉 4천만원이 적정임금 수준으로 거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적정임금 안에는 연봉 수준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사용 억제, 연장근로수당으로 소득을 보전하려는 장시간 노동 억제, 노동시간단축과 원·하청 상생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같은 ‘지역노동연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현대차와 광주시의 투자협상이 깜깜이로 진행되면서 실제 현대차가 제시한 연봉이 4천만원에도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기곤 전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광주지회장은 “광주형 일자리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투자에만 급급해 한다는 소문이 있다”며 “소문이 사실이라면 현대차가 제시한 임금은 저임금일 것이고 원·하청 격차도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광주형 일자리사업을 초기부터 반대했던 일부 노동계는 연봉 4천만원의 적정성 문제와 더불어 동희오토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기아차가 동희산업과 합작해 2004년 설립한 동희오토는 기아차 경차를 수탁생산하고 있다. 기아차나 동희오토 정규직은 거의 없고, 대부분 사내하청으로 채워진 ‘정규직 없는 공장’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동안 지역사회가 검토한 광주형 일자리의 모습은 동희오토와 구분되는 ‘정규직 중심 고용모델’이다. 기존 완성차업체가 직접 운영하든, 합작회사가 수탁운영하든 사내하청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광주형 일자리에 찬성하고 적극 참여했던 광주지역 노동계 관계자들조차 “이러다가는 또 하나의 동희오토 공장만 생기고 말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현대차 투자유치에만 치중하다 보면 사내하청 난립을 막기 어렵다는 얘기다.

현대차와 협상을 주도한 광주시청 전략산업본부 자동차산업과 관계자는 “현재 협상 중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기 어렵다”며 “현대차는 투자의향서에서 지역 노사민정협의회가 올해 3월 발표한 공동결의문을 고려해서 적정임금을 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노사민정협의회 공동결의문은 빛그린산단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표됐다. 적정임금 실현과 법정노동시간 준수, 노사상생발전협의회 운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보장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고용불안을 부를 수 있는 전환배치 허용을 결의해 아쉬움을 남겼다. 원·하청 기업이 상생하는 내용도 빠졌다.

박명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당시 노사민정협의회 발표는 광주형 일자리사업의 4대 가치를 충분히 담지 못했다”며 “빛그린산단에 투자하는 기업은 더 나은 일자리위를 통한 폭넓은 사회적 대화와 그 결과에 따른 협약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자유구역도 지정하고 광주형 일자리도 발전?

광주지역 노동계를 포함해 광주형 일자리에 적극적인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 중 하나는 이용섭 광주시장 당선인의 모호한 태도다. 이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가 만든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의 초대 부위원장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광주형 일자리 확대를 공약했고, 국정과제에도 포함했다. 그런데 이용섭 당선인은 지난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주형 일자리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같은당 윤장현 광주시장의 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는 공약이 나올 법했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광주형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발표한 이는 나경채 정의당 후보였다.

이용섭 당선인은 현대차와 광주시의 투자협정 체결이 무산된 19일 이후에야 언론 인터뷰에서 광주형 일자리 4대 의제를 언급하면서 “광주형 일자리를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뒤늦게 나온 입장도 이용섭 당선인의 공약과 비교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는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빛그린산단을 포함한 주요 산단에 규제프리 경제자유구역을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오는 기업은 국내 각종 규제를 적용받지 않게 되는데, 노동관계법도 대상이다. 적정임금과 적정 노동시간, 원·하청 상생, 노사 책임경영을 강조하는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일정 정도의 규제를 전제로 한다. 경제자유구역 지정과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박해광 교수는 “이용섭 당선인이 경제자유구역을 조성하면서 광주형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기존 경제자유구역은 기업 중심이었기 때문에 지역 시민사회가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4년 사업 무산될 수도 … “사회운동으로 인식해야”

광주시가 지난 4년간 추진한 광주형 일자리사업에 대해 일부에서는 “성과가 하나도 없다”고 혹평한다. 현대차가 투자의향을 밝혔고, 광주시와 투자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역 노사민정이 4대 핵심가치를 설정하고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분명한 성과다. 사회적 대화가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 확대와 갈등적 노사관계를 막을 버팀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명준 수석전문위원은 “현대차 투자의향 표출로 광주형 일자리가 한 걸음 나아갔지만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며 “단순히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업구조와 노사관계 질서를 재편하는 사회운동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태  ta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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