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침대에서 암을 일으키는 방사능이 발생한다는 것.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떠오르게 만든 이 사건은 현재도 그 위험을 충분히 파악했다고 보기 힘들다. 이 사건이 발표되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달 25일 소위 라돈침대에서 노출되는 방사능 수준이 연간 1.37~13.74밀리시버트(mSv) 정도라고 발표했다. 이는 1년 동안 노출되는 자연 방사선이 1mSv 수준임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노출 수준이다. 많은 국민들이 원하지 않은 곳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무방비 상태로 장기간 방사능에 노출됐다는 점은 걱정을 넘어 공포에 가깝다.

지난 주말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우체국 집배노동자가 이를 수거하는 작업에 동원된 것이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10년간 30명이 과로사로 사망하고 23명의 과로 자살이 발생한 집배 노동자들에게 주말 침대를 수거하는 작업을 시킨 것이다. 수년간 라돈침대를 사용하며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능한 빨리 침대를 수거해 폐기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누군가는 이를 이송하고 폐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러한 일을 해야 할까? 이를 결정하는 과정은 어떠해야 할까?

침대 수거작업을 수행한 집배노동자들에게 의견을 묻거나 그 위험을 정확히 알리고 방호조치를 설명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노동조합의 요구에 의해 일부 보호구만 지급한 채 작업은 이뤄졌다. 이렇게 수거한 침대는 당진의 한 야적장에 적재돼 있다. 이를 둘러싸고 주민과 마찰이 발생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침대를 수거한 집배노동자들과 야적장 근처 주민들의 방사능 노출은 매우 미미하다고 설명한다.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보면 원자력안전위원회 설명이 맞을 수도 있다. 라돈은 기체형태지만 라돈의 붕괴물질인 라돈 자핵종은 고체형태인 입자 모양이다. 이 자핵종이 먼지와 결합해서 호흡기로 들어와 지속적인 붕괴 과정을 거치게 된다. 붕괴 과정에서 방사능 물질인 알파입자가 나오고, 이 입자가 암을 일으키는 물질이 된다. 그래서 이러한 입자 물질은 환기를 잘 시켜 준다면 어느 정도의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적절한 호흡보호구가 위험을 줄이는 데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어쩌면 침대를 폐기처리하기 위해 이송하는 작업을 통해 노출될 수 있는 방사능 수준은 건강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문제는 객관적인 사실에 있지 않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안을 느낀다. 또한 어떠한 위험이 특정 집단에게 불공평하게 전가되고 있을 때,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할 때, 실제 위험보다 그 위험이 더 크다고 느낀다. 보스턴시 환경정의국에는 환경정의 지도가 만들어져 있다. 환경정의 지도에는 각 지역별로 소수인종 비율,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의 비율, 소득수준을 표시해 두고 있다. 세 가지 요소가 다 문제가 있는 지역은 별도 색깔로 표시한다. 환경관련 정책을 세울 때 이 지도는 1차로 고려해야 할 자료다. 지역 내에 쓰레기소각장을 만들어야 한다면, 세 가지 문제가 다 있는 지역에 설치되는 건 아닌지 확인한다. 모든 정책 집행에 이 지도는 기본 고려 요소다.

우리 사회에서 쓰레기 소각장은 어디에 설치되는가? 원자력폐기물 처리를 위한 시설은 어느 지역에 설치되는가? 우리 사회에서 위험하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작업은 누가 하는가? 결정은 누가 하고 어떻게 이뤄지는가? 어쩌면 라돈 자체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집단이 의사결정에서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현실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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