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희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18.5.10. 선고 2017가합537232 경영협의회 구성원위원선거 무효확인


1. 사건의 개요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은 상시 3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이나 사업장에서 노사협의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4조). 노사협의회는 근로자와 사용자를 대표하는 같은 수의 위원으로 구성하되 근로자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은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조합 대표자와 그 노동조합이 위촉하는 자로, 과반수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직접·비밀·무기명투표로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근로자참여법 6조2항 및 4항, 동법 시행령 3조1항).

에스케이 주식회의 씨앤씨 사업부문에는 근로자참여법에 따라 설치된 에스케이 주식회사 씨앤씨 노사협의회가 존재하고, 과반수 노동조합은 존재하지 않았다. 2017년 4월 씨앤씨 노사협의회는 근로자위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시행하면서 각 부서별 근로자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회사 내 10개 사업부서당 1명씩 총 10명의 근로자위원을 선출하기로 했다. 이에 근로자수가 42명에 불과한 부문에서도 1명의 근로자위원이, 근로자수가 989명인 부문에서도 1명의 근로자위원이 선출되게 됐다. 즉 근로자 1인의 투표가치 최대 편차가 무려 20배를 초과했다. 뿐만 아니라 위 근로자위원 선정을 위한 선거구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사업부서에 따른 것으로 회사의 일방적 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 가능하고 실제 이 사건 진행 중에도 사업부서 변경이 있었다.

이에 구성원들이 회사 내 게시판 등에 의견을 개진해 부당성을 주장했지만 그대로 선거가 강행됐고, 예상대로 어떤 선거구에서는 불과 21표를 얻은 자가 근로자위원으로 선출된 반면 318표를 얻고도 근로자위원으로 당선되지 못한 자도 있었다. 이에 이 같은 근로자위원 선출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무효라는 취지의 이 사건 근로자위원선거 무효확인 소송이 제기됐다.

2. 판결 요지-근로자수와 무관하게 1명의 근로자위원 배당한 선거구 획정의 정당성 유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22조에서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균등하게 그 노동조합의 모든 문제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규정함으로써 평등의 원칙을 직접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근로자참여법은 노사협의회의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을 동수로 할 것과 근로자위원은 직접·비밀·무기명투표에 의해 선출할 것,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작업 부서별로 근로자수에 비례해 근로자위원을 선출할 근로자(위원선거인)를 선출하고 위원선거인 과반수의 직접·비밀·무기명투표로 근로자위원을 선출할 수 있다고 규정할 뿐 근로자위원 선출에 관해 평등선거 원칙을 명문으로 정하고 있지는 않아 근로자참여법이 평등선거의 원칙을 정하고 있는지, 있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지가 문제가 됐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우선 “근로자는 근로계약 주체로서는 사용자와 대등하고 자유로운 인격을 갖지만, 자신이 체결한 바로 그 근로계약에 의해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에 종속된다. 위와 같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실질적인 종속이 야기된다는 점에 유의해 근로자는 단체로 행동할 때 실질적으로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 서서 자유로운 의사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필요하고, 이와 같이 보는 것이 모든 노사관계법의 기본 입장이다(대법원 1977.7.26. 선고 77다355 판결 참조)”고 전제했다. 그런 뒤 “①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을 염두에 둘 때 근로자참여법상 노사협의회에 여러 권한이 부여된 것은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 사업 또는 사업장에 속한 근로자 전체의 이익을 충분하게 대표할 것임이 전제돼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되고 ② 근로자참여법 6조2항이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에 한해 근로자위원 선정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한 규정 역시 노사협의회 중 근로자위원 선출에 충분한 대표성을 요구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 판단된다. ③ 위와 같이 근로자참여법이 노사협의회 중 근로자위원 선출에 충분한 대표성을 요구하고 있는 이상 그러한 대표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위원 선출에 있어서 평등선거의 원칙 및 적어도 선거구 획정에 있어서는 근로자수 비례의 원칙, 즉 투표가치 평등의 원칙을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기준’으로 삼을 것이 요구된다. 특히 사용자는 근로자위원 선출에 개입하거나 방해해서는 안 되는 점에 비춰 보면 선거구 획정이 사용자의 부문 변경 등 일방적 의사에 따라 좌우될 수 있어서는 안 된다”며 위와 같은 선거구 획정은 위법하고, 각 선거구가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을 가짐으로써 한 부분에서의 변동은 다른 부분에서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바 선거구 획정에 따른 투표가치의 불평등이 생긴 경우에는 전체 근로자위원 선출 자체가 근로자참여법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단했다.

3. 이 사건의 의미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사업장에서는 노사 간의 주요 사항들이 단체교섭을 통해 논의되고, 단체협약 체결로 그 결실을 맺게 돼 노사협의회가 갖는 의의가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건 사업장과 같이 노동조합이 존재하나 아직 정식 단체교섭을 진행할 준비를 미처 갖추지 못했거나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는 사업장 내에서는 노사협의회를 통한 사용자의 보고의무 등을 통해 회사 운영의 주요 사항을 알 수 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들이 결정되기도 한다. 문제는 사업장 내 노동조합이 없거나 있더라도 과반수 노조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 노사협의회가 형식적으로 진행되거나 심지어는 회사 내 근로자들의 의사를 대표할 근로자위원 선출과 운영 모두에 사용자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본 판결은 근로자참여법상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출에 있어서도 평등의 원칙이 준수돼야 함을 명확히 한 첫 사례로서 사업장 내 근로자 누구라도 평등하게 노사협의회에 대표로 선출될 권리와 선출할 권리를 보장해야 함을 확인하고, 향후 불공정한 기준에 의한 선거구 획정 등의 방법으로 민주적인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출을 방해하는 행위를 근절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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