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왕영 공인노무사(건설노조 정책부장)

2014년 여름 새벽 5시 노동현장을 체험하기 위해 패기 있게 서울지하철 신림역 인근 인력사무소를 찾아갔다. 인력사무소 직원은 내게 건설기초안전교육을 받았는지 물어봤고, 나는 처음이라 모른다고 답했다. 패기는 사라졌고 길 잃은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앉아 있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선택돼 철거현장으로 투입됐다. 기초안전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운동화를 신고 추리닝 차림으로 철거현장에 갔다. 벽면에 날카로운 못들이 튀어나와 있고 바닥에도 각목에 박힌 못이 거꾸로 솟아 있었다. 공포스러웠고 피해 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엄청난 먼지였다. 한순간도 편히 호흡할 수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무거운 쇳덩이를 날라야 했다. 주변에서는 목수들이 쇳덩이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다치지 않고 하루를 마친 것만 해도 정말 다행이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집에 갈 시간이 됐다. 일당은 9만원이었지만 9천원을 인력사무소에서 공제하고 8만1천원을 받았다. 함께 일한 아저씨들은 가방에서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이렇게 옷이 더러워질지 몰랐던 나는 지하철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건설노동자들은 복장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아직 탈의실·샤워실조차 마련되지 않은 건설현장도 많다.

건설현장 노동환경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열악하다. 노동조합에 조직된 노동자들이 투입되는 현장은 ‘사람이 일할 수는 있겠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라면 인력사무소를 통해 투입되는 철거현장은 1시간도 견디기 어렵다. 기초안전교육을 받지 않아도 일하는 데 문제가 없다. 산업안전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고용노동부 관리·감독 한계로 인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법 하도급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근로기준법은 무시된다.

요즘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건설현장에서 주 52시간제 시행은 건설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건설현장에 주 52시간제를 정착시키려면 근로감독관이 수시로 건설현장에 와서 현장을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지키고 있는지 감독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되기도 전에 걱정이 앞선다. 과연 노동부는 근로감독 의지가 있을까. 주 52시간제 시행보다 묵인해 왔던 건설적폐를 청산할 의지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건설업계는 주 52시간제 시행에 앞서 개정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건설현장에 무난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잘 준비하고 있을까.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건설업계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근로시간의 엄격한 관리, 명목적 휴게시간 설정, 이중 근로계약서 작성, 노동강도 강화 등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할 수 있는 꼼수를 연구하고 있다. 노동부의 부실한 근로감독이 뒷받침된다면 이런 꼼수는 건설업계의 비상구가 된다.

근로감독은 의지만으로 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근로감독관이 부족하고 예산이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현실의 벽에 부딪혀 건설현장이 불법 온상으로 남아야 할까. 최대한 근로감독관을 늘리고, 부족한 부분은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 법정노동시간을 위반한 사업주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그러나 중벌에 처해진 사례가 극히 드물다. 대부분 가벼운 벌금형에 그쳐 건설사는 법정노동시간 위반이 적발될까 봐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단속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여야 건설현장에 주 52시간제가 정착될 수 있다. 정착되는 과정에서 건설현장도 정상화할 수 있다. 단순한 노동시간단축이 아니다. 주 52시간제 시행이라 쓰고 건설적폐 청산으로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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