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장면 1. 6월12일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뤄졌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놀라운 말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 가운데 백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을 시작하면서 한 모두발언이었다. 그는 “여기까지 온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데, 그 모든 것을 이겨 내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라고 했다. 썩은 구체제를 수호하겠다고 망상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장면 2. 6월13일 치러진 지방자치단체 장과 의원 및 교육감 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낡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이 더 이상 민중의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명명백백하게 입증해 줬다. 4·19 혁명 중의 7·29 선거를 빼놓고 어떤 선거가 이처럼 여야 중 한 정당에게 싹쓸이 수준의 승리를, 다른 한 정당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가져다준 적이 있는가. 혁명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을 통렬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장면 3. 변화와 전진이 지체된 영역 가운데 하나에서 구체제가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다름 아닌 검은 법복의 사법부다. 6월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행한 재판거래 및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자들에 대해 검찰에 고발이나 수사의뢰는 하지 않겠지만, 수사 협조는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수사할 움직임을, 법복귀족들은 저항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법복귀족의 최정상에 있는 대법관들은 내놓고 수사에 반대하고 있다. 바야흐로 썩은 수구 사법체제의 존망을 둘러싼 한판 싸움이 시작됐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심하게 썩었다는 것은 많이 얘기돼 왔다. 국민 신뢰도가 가장 낮은 집단이 정치권이고 그 다음이 행정부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도 그들과 어금버금하다. 그도 그럴 것이 검찰에 대해 사람들은 "색검" 혹은 "떡검"이라고 야유했다. 그런데 검사들이 저들 혼자서 사법을 사유화하고 입맛대로 재판할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건 판사들이 공모해 줘야만 한다. 뭇사람의 시선을 끈 사법비리에는 대개 전·현직 판사가 연루돼 있었다. 근자의 대표적인 사법비리 사건으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서 사건 청탁과 함께 1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최종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인천지법 김수천 부장판사 사건이 있다. 또 전직 부장판사로서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정운호로부터 50억원, 이숨투자자문의 실질적 대표 송창수로부터 50억원 등 도합 100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파기환송심 재판 중에 있는 최유정 변호사 사건이 있다. 그가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로비를 벌인 정황도 있다. 재판에 전관예우가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도는 것은 또 무엇인가. 선임계도 없이 법정에서가 아니라 전화로 변론한다는데, 저들끼리의 밀실 브로커 짓 아닌가.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냉소적인 말이 여태껏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거래가 공공연히 행해져 왔는데도 "재판거래는 있을 수 없다"고, "재판거래는 근거가 없다"고 깨끗한 사법을 강변할 수 있는가.

더구나 이번 문제는 개인 판사가 돈을 받고 개별 재판을 거래하는 정도가 아니라 법복귀족 집단이 수구 지배체제 유지를 위해 행정권력과 음습한 거래를 한 대형사건이다. 이 사건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처럼 사법부에도 판사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그런 의혹은 촛불혁명 직후 양심적인 판사들에 의해 제기됐는데, 양승태 대법원장에 의해 충분한 조사도 없이 ‘사실무근’으로 전면 부인됐다(지난해 4월 진상조사위원회 1차 조사). 이에 양심적 판사들은 추가조사를 요구하며 단식까지 했으나 거부당했다. 지난해 9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독립 운운하며 퇴임하면서 이 문제는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넘겨졌다. 공을 넘겨받은 김명수 대법원장은 올해 1월 ‘추가조사위원회’를 꾸려 2차 조사를 했다. 2월에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을 꾸려 3차 조사를 했다. 임종헌 전 차장 등 전직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컴퓨터와 파일을 조사했다. 그런데 특조단은 5월25일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6월5일 특조단이 조사한 98개 파일을 공개했다. 이를 통해 판사 블랙리스트가 사실상 존재했음이 폭로됐다. 그 파일들의 제목만 봐도 충격적이다. “문제 법관 시그널링 및 감독방안(인사조치 추가)”이라니….

충격적인 것은 대법원에서 이뤄진 의문의 여러 판결들이다. 대표적인 예만 들어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관련, KTX 여승무원 관련, 쌍용자동차 노조 관련 파기환송 판결이 있다. 이 판결들에 대해 해당 문건에는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 왔음”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러고도 사법이 독립적이었다고, 재판이 법과 양심에 따라 이뤄졌다고 우길 것인가. 이것은 명백한 사법농단이고 최순실 사건에 버금가는 국정농단 사태다.

이렇게 사법농단을 하고도 부족해 이들은 3심으로 재판받을 헌법상 권리를 부정하는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 파렴치한 사법농단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를 위해 이룩한 업적으로 내세우며 박근혜 정권과 거래했다. 거래가 성사됐든 아니든 간에 사태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항구적이고 공고한 수구사법체제를 수립하려는 목적으로,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하는 판사들을 사찰하고 반대 움직임을 무력화시키는 치밀한 공작까지 했다. 현 사법부는 민주사법을 압살하는 법복귀족들의 소굴이나 진배없다.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독립해 있어야 한다는 편견과 관행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 썩은 법복귀족의 소굴을 해체하고, 사법부를 국민 명령에 복종하는 민주사법으로 변혁해야 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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