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8.6.24 일 08:00
상단여백
HOME 안전과 건강 전문가 칼럼
노동자 건강을 지키면 시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난달 초 대진침대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다량의 라돈이 검출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이후 라돈 침대 논란이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시민들은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 ‘안방의 세월호’라고 부르며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최근 라돈 침대 사용자가 10만명 정도라고 했을 때 폐암으로 인한 추가 사망자가 비흡연자 100명, 흡연자 2천명에 이를 거라는 보도도 있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은 이것이 과다한 추정이라고 반박했지만, 이는 거꾸로 실제 라돈 침대 사용으로 인해 폐암에 걸려 사망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발생하리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분노가 결코 근거 없지 않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라돈 침대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라돈 침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건강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라돈 침대에 들어가는 음이온 파우더를 만들 때 모나자이트 같은 천연방사능 광석을 분말 상태로 잘게 분쇄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노동자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관련 침대 매트리스 제조업체의 모나자이트 사용현황과 현장 작업자의 건강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안전보건공단과 산하 연구원을 통해 모나자이트 직접 취급사업장에 대한 작업환경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올해 3월 국제기구의 권고기준과 전문가 의견을 참조해 600베크렐(Bq/㎥)을 작업장 라돈 노출기준으로 제정·고시했으며 라돈에 대한 작업환경관리 가이드라인도 조속히 마련해 사업장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했다.

라돈은 폐암 원인 중 흡연 다음으로 유명한 1급 발암물질이다. 라돈을 방출하는 모나자이트 같은 천연방사능 광석은 예전부터 음이온이나 원적외선이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그런데 노동부는 올해 초에야 작업장 라돈 노출기준을 만들었다. 이제서야 기준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동안 모나자이트 같은 천연방사능 광석을 취급하는 노동자 건강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부는 마치 이번 사태에 대응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실은 원래, 진즉에 했어야 하는 일을 이제야 하고 있는 것이다.

재작년습기 살균제 사태로 세상이 시끄러웠을 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것을 제조ㆍ유통했던 노동자들의 건강은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었던 노동자들, 라돈 침대를 만들었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제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과연 알고 있었을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 제품들은 제조·유통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각종 유해화학물질이 원료·첨가제 등 다양한 형태로 사용된다. 대부분의 경우 노동자들이 소비자들보다유해화학물질에 훨씬 고농도로 노출되게 된다. 그리고 저농도에 장기간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저농도에 장기간 노출됐을 때 노동자들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대개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노동자들이 제품의 제조·유통 과정에서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리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다면, 그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리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상상해 보자. 모나자이트 같은 천연방사능 광석이 사용되기 시작한 초기에 정부에서 이 광석이 라돈 같은 방사능을 방출해서 폐암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작업장 라돈 노출기준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최소한 2012년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생활방사선법) 시행에 따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천연방사성 원료물질 취급 사업자와 제품 제조업자’를 관리하겠다고 했을 때 정부부처 간 협조를 통해 노동부에서 즉각 작업장 라돈 노출기준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라돈 침대 제조 과정에서 다량의 방사선이 방출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제조사에서도 해당 제품을 만들 때보다 신중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아예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천수만 가지의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노출을 회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수천수만 가지 유해화학물질의 노출을 피하려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유해화학물질을 제품 형태로 사용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품을 제조·유통하는 노동자들에게 안전한 수준의 화학물질은 대부분 소비자들에게도 안전하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면 시민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

김정수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