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2018년 5월25일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3차 보고서가 발표됐다. 보고서 내용의 핵심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판사사찰’과 청와대와의 ‘재판거래’ 의혹이다. 이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비견할 만한 양승태의 ‘사법농단’이었다. 이에 거래된 재판의 피해자들이 6월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30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했다. 피고발자 명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법원행정처 심의관들과 박병대 전 대법관 등 전현직 대법관들이다.

피고발자 중 법원행정처·양형위원회 소속 법관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필두로,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전 법원행정처 심의관인 정다주(현 울산지법 부장판사)·김민수(현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박상언(현 창원지법 부장판사)·노재호(현 서울고법 부장판사)·시진국(현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김현보 전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 등이다.

임종헌 전 차장은 키코·과거사·통상임금·콜텍·쌍용자동차와 전교조 시국선언, 전교조 법외노조, KTX 승무원, 철도파업 사건을 검토하고,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이후 일련의 사건을 기획·지시했다. 법원 내 인사모·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과 법관 사찰을 지시했다. 임 전 차장 지시를 받은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은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원 행정소송 예상 및 파장 분석,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원 대책 검토 및 제소를 기획했다. 법관들의 모임인 ‘이판사판 야단법석’ 다음 카페를 사찰하고 폐쇄를 유도했으며, 2016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거에 개입했다. 심지어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2만4천500여개 파일을 삭제해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증거를 인멸하고,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한 선배 법관에 대한 징계를 추진하고, 상고법원 반대 법관의 재산까지 뒤졌다.

법원행정처는 재판을 본업으로 하는 사법부 내에 인사·예산·회계 등 행정사무를 위해 만들어진 지원부서다. 그러나 실상은 3천명의 법관 중 30여명으로 구성된 엘리트 법관 조직으로서, 판사 사찰과 재판거래 등 대법원장의 친위대 역할을 했음이 드러났다. 승진을 위한 조직원으로서의 충성을 넘어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을 위반한 행위다.

피고발자 중 전직 대법관은 양승태·박병대·김능환·안대희·이인복·전수안·양창수·이상훈·신영철·박보영·민일영·김용덕, 현직 대법관은 조희대·고영한·김창석·김신·김소영·권순일·이기택이다. 전현직 대법관은 소위 '양승태 코트' 시절 대법관으로서 앞서 언급한 대법원 사건에 전원합의체 혹은 소부(小部)사건에 관여했다.

이 중에는 개별사건에 따라 피해자 입장에 선 소수의견을 내기도 했으나, 재판거래 의혹 사건에 관여한 것을 근거로 고발대상이 됐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을 알면서 묵인·방조했거나, 몰랐다면 같은 대법관으로서 감시·통제하지 못한 법적·윤리적 책임이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원인이 된 앙시앵레짐(옛 체제)에서의 신분은 제1신분(성직자)과 제3신분(노동자), 제2신분인 ‘법복귀족’이 있었다. 이들은 세습화되던 전통적인 ‘대검귀족(혈통귀족)’과 달리 후천적으로 법관이나 행정관료가 돼 고등법원과 행정을 장악했다. 처음에는 대검귀족과 대립해 혁명에 협조적이었으나, 지위를 세습하고 관직을 독점하면서 혁명에 반대했다.

보고서 발표 이후 특별조사단의 김명수 대법관과 고등법원 판사, 전국 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은 “법관 독립과 사법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사실에 인식을 같이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반대”했다. 문건 공개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일선 판사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정을 한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18세기 프랑스 법복귀족의 실체를 확인한다.

하지만 역사는 봉건적 세습과 부패를 심판한 혁명세력이 승리했음을 보여준다. 기득권 스스로 개혁할 것을 촉구했지만 끝내 이를 거부한 세력의 말로다. 선출된 권력도 시민이 직접 끌어낼 수 있음을 우리는 얼마 전 봤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21세기 대한민국 법복귀족이 스스로 개혁을 포기할 때, 이들 역시 시민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사법농단 헌법위반 법관들을 수사하고 탄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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