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한국기술자격검정원 채용비리 특별감사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1월 말 정부 합동 채용비리 특별대책본부가 공공기관 채용과정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 5개월도 안된 시점에 하는 재조사다.

기술자격검정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2년 1월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도해 설립한 기관이다. 공단에서 국가기술자격 종목 중 12개 종목의 검정 집행업무를 재위탁받아 필기·실기시험과 자격증 발급업무를 하고 있다. 설립 당시부터 위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는 직원이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재위탁을 결정해 특혜를 준 사실이 밝혀졌다. 이달 말 상시검정업무 재위탁 사업이 종료되면 검정원은 청산된다. 노동부는 검정원 채용비리 여부를 왜 지금 다시 조사하는 걸까.

2012~2017년 전체 입사자 대상 채용비리 여부 조사

10일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8일 직업능력평가과와 감사관실 합동으로 검정원 채용비리 특별감사에 들어갔다. 특별감사 기간은 19일까지다. 최상운 노동부 직업능력평가과장은 "검정원에 채용비리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어 점검하는 것"이라며 "정부 합동 채용비리 특별점검 때 최근 5년(2013년 1월~2017년 10월)으로 감사기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조사에서 제외됐던 2012년도 입사자들의 채용 실태부터 살필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정원이 신설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입사자 전체를 대상으로 채용비리 여부를 재조사한다는 계획이다.

검정원은 올해 초 정부 합동 특별점검에서 78건의 채용비리가 적발됐다. 모집공고 위반 38건을 비롯해 △심사위원 구성 부적절 2건 △부당한 평가기준 13건 △규정미비 10건 △기타 15건이다. 노동부는 이 중 검정원이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된 2017년 1월 이후 적발 건수만 문제 삼아 인사 담당자들을 징계하는 데 그쳤다.

당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지 않았던 노동부가 5개월도 안돼 검정원 채용비리를 전면 재조사하겠다고 나선 배경에는 청산되는 검정원 직원 고용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달 30일이면 공단과 검정원이 맺은 상시검정업무 재위탁이 끝난다. 지난해 감사원 감사와 국정감사에서 공단이 재위탁 기관 공개모집 추진과 선정 과정에서 부당한 점이 발견됐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검정원 재위탁 기간을 올해 6월까지로 정했다. 앞으로 해당 업무는 공단이 직접 수행한다.

노동부는 "차질 없는 검정업무 수행"을 명목으로, 공단에 별도 직렬을 신설해 필기전형 없이 검정원 직원 전원을 경력직으로 채용하라고 지시했다. 노조는 이를 '묻지마 특혜채용'으로 규정했다. 공개경쟁채용이 아닌 특혜채용을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노조(위원장 현상훈)는 "검정원이 태생부터 퇴직관료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설립된 데다, 온갖 채용비리가 만연했다"며 "불법채용을 묵인한 노동부가 이번에도 특혜채용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정원은 노동부 놀이터?
설립 3개월 만에 검정업무 재위탁 사업자 선정


노조 주장을 이해하려면 검정원 탄생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검정원은 2011년 8월30일 노동부에서 법인 설립허가를 받은 국가기술자격검정협회가 전신이다. 그 뒤로 탄탄대로가 열렸다. 같은해 9월20일 법인설립 등기를 했는데 불과 3개월 뒤인 12월26일 국가기술자격 재위탁 사업을 따냈다. 이틀 후 협회는 한국기술자격검정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듬해 1월 시작된 재위탁 사업은 위법성 논란에 휩싸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노동부는 당시 직접 운영하던 사업주 훈련업무를 산업인력공단에 이관했다. 대신 공단이 수행하던 국가기술자격 검정업무를 재위탁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국가기술자격법(23조)에는 국가기술자격 종목의 시험문제 출제와 검정 시행·관리, 채점에 대한 주무부처 장관의 업무를 관련 전문기관 또는 단체에 위탁할 수 있다고 돼 있을 뿐 '재위탁' 내용은 없다. 국가기술자격증 업무를 재위탁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러자 노동부는 법 개정 대신 2011년 10월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을 개정해 "재위탁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었다. 공단은 이를 근거로 설립 3개월밖에 안된 검정원에 자격검정업무를 재위탁했다.

특혜는 계속됐다.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상 수탁기관은 검정 실시를 위한 조직·인력·시설을 갖춰야 한다. 검정원은 해당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위탁기관으로 선정됐다. 공단이 '재위탁 수탁희망기관 공모 공고'를 하면서 자격 요건을 없앤 덕이다.

공단은 이사회 의결도 거치지 않고 검정에 필요한 시설·장비·사무공간을 검정원에 무상으로 지원했다. 검정원이 수탁기관 선정평가를 받기 위해 작성·제출해야 하는 사업계획서까지 공단이 대신 작성해 줬다. 노동부와 공단은 검정원을 수탁기관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힘을 쏟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검정원은 공단과 노동부 퇴직자로 채워졌다. 2012년 1월1일부터 2016년까지 공단(55명)과 노동부(5명) 직원이 퇴직 후 검정원으로 이직했다. 공단을 퇴직하고 검정원으로 이직한 직원들은 최대 1억7천만원의 명예퇴직금까지 챙겼다. 검정원 이사장·감사·사무총장·본부장 등 간부직 5개는 노동부·공단 퇴직자 재취업 자리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수탁사인 검정원의 인건비·운영비·업무추진비가 위탁사인 공단보다 훨씬 많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 발표된 공단 기관운영에 대한 감사원 감사에서 공단은 2012~2016년 검정원에 대한 임직원 인건비·운영비·업무추진비 등 재위탁 사업비를 공단 예산집행기준보다 방만하게 지원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검정원 임원(평균 1억7천만원)이 공단 임원보다 적게는 959만원에서 많게는 2천925만원을 더 받았다. 검정원이 공단·노동부 퇴직관료들의 자리 보전과 노후보장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공개경쟁시험 치르지 마라"는 노동부
산업인력공단노조 "특혜채용 강요하나" 반발


감사원에 이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비슷한 지적과 비판이 이어졌다. 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공단이 검정업무를 다시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검정업무를 다시 가져오게 된 공단은 올해 4월30일 기획재정부에서 수시정원 명목으로 정원 115명을 확보했다.

공단 인사규정 20조(신규채용)에 따르면 직원 채용은 공개경쟁시험이 원칙이다. 하지만 노동부가 이달 1일 공단에 보낸 공문에는 공개경쟁채용 내용이 없다. 대신 공단에 검정 직렬을 신설하고, 검정원 직원 대상 서류·면접 심사로 경력직을 채용하라고 지시했다. 검정원 직원들을 서류·면접만 본 뒤 전원 채용하라는 뜻이다. 현재 검정원 직원은 85명이다.

공단이 노동부 방침을 따르려면 인사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노조가 "공단에 불법적 특혜채용을 강요하고 있다"고 반발하는 이유다. 현상훈 위원장은 "감사원 감사에서 확인된 낙하산 임원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채용비리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공단 인사규정을 바꾸면서까지 검정원 직원 전체를 특혜채용하는 게 공정한 처사냐"고 반문했다.

노조 문제제기에 노동부는 "특혜채용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최상운 과장은 "검정원이 2012년부터 제공한 검정서비스가 있기 때문에 1차적으로 적격심사를 통해 경력직으로 채용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공개경쟁채용 방식은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과장은 "검정원 직원 전원을 채용하라고 못 박은 적은 없다"며 "다만 채용비리가 있다는 내부 지적이 계속 있으니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입사자들을 대상으로 채용비리 여부를 조사해 어떤 결과가 나오면 (공단이) 심사할 때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가 검정원 채용비리 재조사에 착수한 이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특별감사에서 채용비리가 확인된 직원들만 걸러 내면 나머지 정상적인 절차로 채용된 직원들은 그냥 (공단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냐는 얘기다.

노조는 "노동부 채용비리 재조사와 검정원 직원 채용문제는 별개"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현상훈 위원장은 "공개경쟁채용이 아닌 검정원 직원만을 위한 채용방식은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 국정과제인 블라인드 채용에 앞장서야 하는 공단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조는 노동부 감사와 별개로 11일 전 검정원 사무총장 A씨와 공단 B지사장 C씨를 검찰에 고소·고발할 예정이다. A씨는 재임기간(2012~2016년) 동안 별다른 기준 없이 검정원 직원 불법채용 과정에서 전권을 행사했다는 혐의다. C씨는 검정원 재위탁 사업을 총괄하는 능력평가국장으로 일할 때 채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검정업무를 맡을 인력에 대한 채용계획을 수립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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