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1. 풍경 하나. 지난 5월28일 상당한 논란에도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양대 노총과 한국경총마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산입범위 논의를 다시 하기로 의견을 모은 상황에서 정부·여당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졸속적인 법 개정안 통과를 추진했다. 이번 개정안은 상여금 쪼개기를 합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와 매월 지급하는 상여금 및 복리후생적 임금의 일부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노동자 상당수는 향후 최저임금 인상에도 실질적인 임금인상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됐다. 더욱이 산입범위의 단계적 확대로 이와 같은 혜택을 보지 못하는 노동자 규모는 상당 기간 상당수로 증가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개정안은 노동조건의 노사대등결정의 원칙을 담고 있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에 대한 예외까지 허용하면서 추진됐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여당은 최저임금의 원만한 인상조건을 만들고, 임금항목을 단순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노동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조건 없는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라는 공약 후퇴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임금항목 단순화를 꾀하는 것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번 개정안을 통해 임금항목이 단순화되지도 않을 것이다. 몰랐다면 순진한 것이고 알고도 추진한 것이라면 악의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2. 풍경 둘. 삼성의 노조파괴 행태는 전방위적이고, 지속적이고, 지독하게 진행됐다.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한편으로 지금 드러나는 것처럼 공식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고, 쉬운 일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인 삼성에 대해 권력기관 어느 한 곳 제대로 들여다볼 생각도, 의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묘한 풍경을 보고 있다. 공안의 칼로 노동을 때려잡던 검찰이 이제 공공형사수사부를 앞세워 삼성의 노조파괴 행태를 수사하고 있다. 매우 어색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스스로 혐의 없다던 과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깊은 반성이 깔려 있기를 바라지만, 그게 아니어도 지금 진행하는 수사라도 제대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편으로 검찰 수사는 삼성전자서비스라는 삼성그룹의 한 계열사에 한정돼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삼성의 노조파괴는 그룹 수뇌조직을 정점으로 전체 계열사에서 전방위적으로 진행됐다. 지금이 아니면 이러한 노조파괴 행태를 제대로 조사하고 단죄할 기회를 갖기 어렵다. 그러하기에 검찰은 삼성그룹 전체를 대상으로 노조파괴 행태를 수사해야 한다. 노동운동과 이를 지지하는 제 세력은 검찰 수사가 이와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삼성은 자신의 추악한 행태를 반성하고 과거와 단절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무노조 경영 폐기를 선언해야 한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번이 아니면 권력은 물론 삼성도 과거와 같은 행태를 반복할 것이다.

3. 풍경 셋.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조사 결과 발표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불편부당한 판결 선고로 공정한 판관 역할을 부여받은 사법부가 권력화한 결과다. "사법부가 VIP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한 사례(국가경제발전을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통상임금 판결,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바람직한 노사관계의 정립을 위해 노력한 KTX 승무원 판결, 콜텍과 쌍용차 정리해고 판결, 2014년 철도노조 업무방해죄 판결 등)를 제시하며 그간 사법부가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그럼에도 향후 BH가 상고법원 도입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BH 국정운영기조를 고려하지 않는 독립적·독자적 사법권 행사 의지를 표명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건까지 확인됐다.

사법권력은 국민이 부여한 권한이나 국민적 통제를 망각하고 정치권력만 바라보며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급기야 재판조차 거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한 발 양보하더라도 이번 사태의 핵심이자 본질은 단순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아니라 ‘재판거래 의혹’이다. 세 차례 조사에서 더 이상 내부조사로 진실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외부 힘을 통해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고 잘못된 재판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4. 세 가지 풍경에서 정치권력은 물론 자본권력·사법권력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목격된다. 어느 하나 노동을 온전히 품은 세력은 없다. 적대 또는 파괴의 대상이거나 거래 수단일 뿐이다. 미래의 노동을 위해 현재의 노동을 담보로 삼고자 한다. 노동은 밥이요, 국민이요, 삶 그 자체임에도 어찌 이런 푸대접을 넘어선 상황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 만연한 것인지 개탄스럽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내세웠다. 정부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스스로 내세운 공약과 정책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노동 주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된다. 나머지는 주체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력·자본권력·사법권력이 노동을 실질적으로 존중하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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