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진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국회는 지난 28일 최저임금을 삭감하는 법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배신감에 치가 떨린다. 허탈하다. 국회를 향한 노동자들의 분노는 차벽에 가로막혔다. 참혹하고 허탈하다. 촛불정부, 소득주도 성장론, 노동존중이란 말은 허구였다.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인 저임금 노동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3년 내내 총파업과 총궐기로 박근혜 노동개악을 저지하고 광장 촛불을 주도한 민주노총은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짓밟혔다.

혹시나 했던 문재인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분노와 상실감을 더하게 한다. 범죄자들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국회, 해야 할 책무는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노동자 삶을 짓밟는 국회,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는 여야가 따로 없다.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억압하는 국회는 청산해야 마땅하다.

촛불항쟁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최저임금 1만원을 약속했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애초 '5년 내'에서 '3년 내' 달성으로 단축된 것은 광장의 요구, 촛불의 명령 덕이었다. 소득 상위 10% 노동자와 하위 소득 노동자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사회에서 양극화와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서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도 최저임금 대폭 상승은 사회적 공감대를 획득하며 시대적 과제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민주노총은 ‘왜 3년인가? 지금 당장! 1만원’을 요구하면서 6·30 사회적 총파업을 전개했다. 너무나 정당한 요구였다. 600만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절박한 요구다. 지난해 7월15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올해 최저임금이 7천530원(16.4% 인상)으로 결정되기 직전 조금이라도 더 올려야 한다고 독려했다. 예년에 비해 대폭 상승한 금액이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첫해 최소한 8천원 정도는 돼야 3년 내 1만원 공약이 실현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최저임금은 헌법에 근거한 정책임금이기에 정부 의지와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리한 주장이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어찌 됐든 투쟁의 성과물이다.

시급 7천530원 결정에 마치 한국 경제가 휘청할 것처럼 자본은 엄살과 사실왜곡으로 위기를 조장하고 공격했다. 이런 분위기를 업고 현장에서는 온갖 꼼수와 탈법이 난무했다. 소정근로시간을 줄이고 상여금을 쪼개고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전방위적으로 행해졌다. 교육청 꼼수에 맞서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지난해 추석명절에 교육청 앞에서 단식투쟁을 해야만 했다.

내년부터 매월 최저임금의 25%(주 40시간 기준 39만3천442원)를 초과하는 상여금과 최저임금의 7%(11만163원)를 넘어서는 복리후생수당은 산입범위에 포함된다. 해마다 5%씩 야금야금 산입범위를 넓혀 2024년 이후에는 아예 전액을 포함시킨다고 한다. 산입범위 확대도 심각하지만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때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과반수 동의도 없이 의견만 들어도 된다는 특례 결정은 그래서 더욱 우려스럽다. 근로기준법은 무시됐고, 근로기준법 취지와 원칙은 훼손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잔인하고 치명적이다.

최저임금위 결정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국회를 보면서 마치 국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단위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시행 5개월 만에 최저임금 결정을 무력화하는 마당에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뭐하나. 분노가 확산할까 걱정된 정부는 연봉 2천500만원 이하 노동자는 손실이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면 2천500만원 이상 노동자들은 임금이 삭감돼도 괜찮은가? 노동자 피땀으로 고액의 세비를 받는 정부 관료들과 국회의원들이 어찌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통을 헤아리겠는가.

이미 예상했다. 지난해 민주노총 6·30 사회적 총파업을 비난하고 근로기준법 개악에 앞장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모습을 보면서. 노정교섭을 회피하고 노동자를 들러리로 세우려는 집요한 집착 속에서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은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동안 최저임금은 삭감됐고 휴일근로수당 할증률은 축소됐다.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용두사미로 귀결되고 있고, 구조조정은 노동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했으며, 노동 3권 보장은 기약이 없다. 민주노총이 겪는 분노와 우려는 적지 않았다. ‘토사구팽’이란 속담이 떠오른다. 속된 말로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더 큰 투쟁으로 개악안을 철회시키는 투쟁에 전력을 다하자. 또한 타산지석으로 삼자.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노동자 운명은 노동자 투쟁으로 개척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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