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광주의 한 공업고등학교.

“5명씩 조를 나눠서 한 가족이 되고, 각자 역할을 정해서 한 달 생활비를 짜 보자”는 교사의 말에 아이들은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친구들로 이뤄진 가족회의에 들어갔다. 집세부터 통신비·의류비·교육비·식비 등 아이들은 나름 알뜰한 생활 예산을 짜냈다. 어떤 조는 한 달 생활비가 1천만원이 넘었다. 대개 500만~600만원 선으로 생활비가 나왔다.

하지만 두 번째 과제를 받자 아이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정해진 수입에 맞춰서 생활비를 조정해야 하는데, 그 수입은 바로 최저임금이다.

결국 두 번째 가족회의 끝에 아빠는 물론 엄마도 일을 나간다. 엄마의 임금도 최저 수준이다 보니 대학생 아들, 고등학생 딸도 알바전선에 나선다. 저축을 그만두고, 보험을 해약하고, 차를 팔고, 집세가 싼 곳으로 이사 계획을 세우는 아이들. 심지어 어떤 조는 입 하나 줄이겠다고 막내를 다른 집으로 입양 보낼 계획을 세운다.

‘최저임금 밥상 차리기’라는 체험학습을 통해 아이들은 우리 사회 최저임금 수준이 자신이 생각하는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수입과 얼마큼 동떨어져 있는지 몸소 겪는다.

7천530원, 16.4%라는 숫자를 보면 마음이 짠하다. 올해 최저임금을 대표하는 이 숫자들은 지난해 7월 이후부터 속절없이 보수언론과 야당의 뭇매를 맞았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망할 것이며, 실업자는 늘어나고 이로 인해 우리 경제가 절단 날 것이라는 예언을 쏟아 냈다. 그 예언을 현실화하기 위해 그들은 정부 관료에게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그러니까,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지 않느냐고!”

숱한 공격을 받던 올해 최저임금은 적용된 지 불과 5개월 만에 복잡한 임금체계의 희생양으로 수술대에 누워 있다. 이번엔 산입범위가 문제다. 정부·여당도 가세했다.

여당 원내대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반대하는 노동계에 “기본급만 가지고 최저임금을 산입하면 연봉 3천만~5천만원대 노동자들도 최저임금 대상자가 될 수 있다. 누가 봐도 불합리한 것은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합리적’이란 것은 무엇일까.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사용자들은 일방적으로 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시키고, 식대를 폐지하는 식으로 꼼수를 부렸다. 국회는 그 꼼수를 합리화하기 위해 법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합리적인가?

연봉 3천만원씩(!)이나 받는 노동자의 기본급이 최저임금을 밑돌 정도라면 그것은 임금체계 문제고 노사가 교섭을 통해서 풀어야 할 사안이다. 애꿎은 최저임금법을 고쳐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까지 막아서는 것이 정말로 합리적인가?

차라리 국회의원 월급 1천150만원(연봉 1억3천796만원)에 사용내역은 물론 지출 증빙서류를 공개하지 않는 정책개발비(1인당 233만원)와 가족수당, 자녀 학비를 포함시키라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노동자들은 월급에 이 모든 수당이 다 포함돼 있는데 왜 국회의원들만 별도로 받나. 무엇이 더 합리적인지 한번 알아보자. 국민투표도 좋고, 여론조사도 좋다.

최저임금과 관련해 지금까지 들은 가장 속 시원한 말은 “그럼, 네가 한번 (그 돈으로) 살아 봐”다. 백번 양보해서 최저임금 받으며 살아 보라는 얘기는 하지 않을 테니, 연봉 3천만원 받으면서 기본급을 최저임금으로 받고 한번 살아 보길 바란다.

아이들도 ‘이 돈으론 못 산다’고 얘기하는 것이 최저임금의 현실이다. 수백만 노동자들이 매년 6월 얼마나 오를지 협상을 기대 반, 한숨 반으로 지켜보는 것 또한 현실의 최저임금이다. 수억원의 국민세금을 받으며 부정채용을 청탁하거나 공금을 횡령한 범죄 혐의자도 동업자 정신으로 지켜 내는 조폭과 다를 바 없는 자들이 함부로 두드릴 동네북이 아니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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