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최저임금 시급 1만원이 사라지고 있다. 산입범위 확대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이런 주객전도가 없다. 최저임금 1만원은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후보들의 공약에 반영되면서 사회적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된 대표적인 노동의제로 공인됐다.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동안 불평등 양극화로 고통받은 한국 사회 정상화를 기약하는 마중물로 주목받았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임에도 최대 저임금 노동자 비율 유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만큼 최저임금 1만원이 최대 다수 국민인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바로미터가 될 거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지난해 역대 최대인 16.4% 인상이 실현되면서 기대가 현실로 바뀌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됐다. 그런데 이때부터 역설적으로 최저임금 1만원의 위기가 시작됐다.

따져 보자. 시대 요구인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세력이 누구인지 누구나 알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군림하며 대부분의 이익을 독식한 재벌자본이다. 법까지 농락하며 오늘의 암울한 불평등 사회를 주조한 재벌자본의 불법행위와 경제적 강탈 관행을 뿌리 뽑지 않으면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쪽 끝에 서 있는 나뭇조각을 밀쳐 다른 조각까지 연쇄적으로 넘어뜨리는 도미노의 첫 나뭇조각이 재벌자본이다. 그 나뭇조각부터 가장 먼저 바로 세워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고충을 해소하기 위한 핵심적인 정책도 자명하다. 임대료와 카드수수료 인하, 프랜차이즈 가맹점 본사의 과도한 로열티와 비용전가 시정, 원·하청 불공정거래 근절과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제한 등이다. 근본적인 구조적 요인을 혁파하면서 적정한 정책이 시행되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충분히 가능하다.

수구보수언론이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며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방패막이로 앞장세우는 건 어리석은 단견이다. 현실의 여러 제약을 극복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의 가장 큰 수혜자가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될 때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 선순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500여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을 향상시키고 내수진작을 통한 건전한 국민경제 기반을 마련하려면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내실이 동반해야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큰 건 사실이지만 해법은 근본을 다스리는 데 있다. 재벌자본의 편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대증요법으로 일관한 지난 20여년의 결과가 청년들이 헬조선으로 부르짖는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촛불항쟁이 왜 일어났는지, 국정농단을 가져온 정경유착이 어떻게 구조화됐는지 돌아봐야 한다. 재벌의 적폐와 최저임금 수준은 동전의 양면이다.

최저임금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그 최저수준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시급 7천530원 최저임금은 부끄러운 수치다. 산입범위 논란이 적정한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는 빌미가 돼선 안 된다. 무노조 미조직 노동자가 압도적 다수인 조건에서는 최저임금이 인상되는 만큼 우리 사회 평등도가 올라가고 소득주도 성장도 실현될 수 있다. 사회통합과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기반이 튼튼해지는 건 물론이다.

2019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해야 하는 법정시한이 6월28일이다.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산입범위 논란으로 미뤄진 데다 6·13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겹쳐 미궁에 빠진 셈이다.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가 8월5일이므로 법정시한을 넘기더라도 7월15일까지는 결정해야 한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말대로 한참 늦었다. 애초 최저임금위원회 안으로 정리됐다면 좋았겠지만 한 차례 실기하고 국회로 넘어오면서 실타래가 더 엉켰다. 그 실마리를 국회가 풀기는 어렵다. 임금은 당사자가 반대하면 타협하기 쉽지 않다. 노사 합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국회에서 결정되더라도 지속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소모적 공방만 치열해진다. 조속히 일단락 지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지금 국회가 나설 일은 아니다.

6대 제도개선 과제 중 하나인 산입범위 문제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현재 조건에서는 노·사·공익위원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과 직결된 산입범위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 홍영표 원내대표가 총대 멘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최저임금위가 제몫을 하고 어렵사리 시작된 사회적 대화도 진전시켜야 한다. 다른 방도는 없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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