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한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23일 오후 한국노총은 국회 정문을 바라보며 “최저임금 개악저지”를 기치로 각 조직 대표자와 간부들이 참여하는 집회를 가졌다. 실로 오랜만이다. 노동시간 특례조항 폐지를 포함한 노동시간단축을 촉구한 집회 이후 계절이 세 번 바뀌었다. 초여름이라고 하기에는 햇살마저 따가운 시각이었지만 많은 대표자들이 참여했다. 그만큼 중요하고 절박하기 때문이리라.

최저임금 문제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22일 새벽 국회에는 아차하면 상여금과 각종 수당이 최저임금에 산입될 지경이었다. 양대 노총 저항으로 소위 통과를 가까스로 면했지만 24일 다시 논의를 이어 가겠다고 예고된 상태다. 그동안 잠자던 국회가 최저임금 문제에서 의기투합한 까닭은 도무지 알기 어렵다. 다만 그간 정부와 여야의 분위기로 볼 때 이번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만은 직감할 수 있다.

최저임금법 개정 논의가 불붙는 현실에 대해 필자는 여러 차례 비판을 제기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최저임금은 관심 대상이 되지 않아야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는 아예 찾기 어려울 정도라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정상적이지 않을까. 언제까지 매년 최저임금과 씨름해야 하는가.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위한 여러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왜곡된 분배를 정의롭게 바로 세우는 데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상여금과 수당을 포함하겠다는 지금의 최저임금 논란은 사실 본말이 전도됐다. 헌법(32조1항)과 최저임금법은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입법취지로 못 박고 있다. 현재로선 상여금과 제 수당을 포함시킬 경우 위와 같은 목적을 도저히 달성할 수 없다는 게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정부와 여야는 그 반대 편에 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작 객관적인 자료는 제시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같은 공간이지만 그들에게만은 같은 현실이 아닌가 보다.

공감력이 부족한 이들 정부·국회보다 이른바 보수언론은 한술 더 뜬다. 예를 들어 “무려 연봉 4천만~5천만원에 이르는 노동자도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 게 말이 안 된다”는 투다. 기자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는 묻지 않겠다. 주장 그대로만 보더라도 정말 비논리이지 않은가. 먼저 그런 사업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정부와 사회적 지원이 충분한지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말 어렵다면 그 원인이 최저임금에 있는지 아니면 계단식 하청구조 등 다른 요인이 더 큰지 정도는 분석하는 게 언론의 도리이지 않을까.

한 언론사 보도가 우리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최저임금 자체만은 아니었다. “전체 노동자가 1천900만명인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200만명 아니냐.” 기자 리포트의 일부다. 누구일까. 짐작을 해 봤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그제 새벽에 여당의 원내대표가 노동소위를 찾아가 한 말이라고 한다. 영상을 다시 찾아봤다. 최저임금 논의를 더 이상 끌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그저 무심코 한 말이라고 해야 할까? 한마디였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작게는 양대 노총에 대한 여당과 정부의 인식이다. 200만명에 불과한 조직노동자이므로 최저임금 문제에서 크게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다. 사실 필자에게는 “당신들 10%의 욕심 때문에 나머지 90%의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지 않느냐”는 소리로 들린다. 조직된 양대 노총으로서는 그야말로 부끄럽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고작 10% 내외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스스로 조직률을 제고하고 더 많은 노동자들을 끌어안지 못했다는 반성도 나오는 터다. 그러나 그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먼저 200만 조직된 노동자에 한정해 보자. 그 어디에도 존중을 찾기 어렵다. 간혹 보여 준 인사치레는 진짜가 아니었다는 의심이다. 200만 노동자들이 노동자 전부는 아니지만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투쟁한 역사를 떨이로 팔아넘겼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스스로 투쟁 역사의 한 장을 채웠다고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던가.

200만명은 그저 숫자만으로만 평가할 수 없음을 그도 잘 알 것이다. 녹록지 않은 노동환경 속에 말 그대로 지켜 낸 숫자다. 이른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조차 비준하지 않는 나라에서, 노총 위원장을 스스럼없이 구속하는 나라에서 200만명이다. 문명국 일반수준의 노동기본권 제도가 보장되는 노동현장이라면 그 숫자가 배가됐을 게 분명하다. “노동존중 사회”라는 대통령의 각오가 있은 지 고작 1년이지만 조합원수가 늘고 있다는 통계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 말한 자, 사과가 먼저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