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11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위촉장 전수식 및 전원회의’에 참석한 노동자위원들이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정기훈 기자>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올해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16.4%(1천60원) 오른 7천530원으로 결정했다. 역대 최고 인상액이다. 재계와 보수언론은 인상된 최저임금이 현장에 적용되기도 전에 “인건비 부담 증가로 고용대란이 우려된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고용이 악화하는 것도, 물가가 오르고 경제가 어려운 것도 모두 최저임금 탓으로 돌렸다. 5월 현재까지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대란이 일어났거나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실증 결과는 단 한 건도 없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은 저임금 노동자 삶의 질 개선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며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소득주도 성장을 이루려면 최저임금 1만원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문 대통령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공약했다. 이를 위해 내년 최저임금도 15~16% 올려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려는 노동계와 속도조절을 요구하는 재계, 고민하는 정부. 최저임금 1만원을 둘러싼 창과 방패의 싸움이 막을 올렸다.

“속도조절” vs “1만원 실현”

최저임금위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첫 전원회의를 열었다. 최저임금위 노·사·공익 위원 27명은 류장수 위원을 위원장에, 김성호 상임위원을 부위원장에 선출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금년도 최저임금 연착륙 상황과 고용·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저임금 노동자의 격차를 해소하고, 소득분배 상황이 단계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장관이 말한 “합리적 수준”은 뭘까.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공약한 정부는 최근 슬그머니 속도조절론을 꺼내 들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불안과 경제위기는 없다”면서도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재계의 아우성에 주춤하는 형국이다. 지난 8일 이성기 노동부 차관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반드시 해야 하는 과제지만 2020년까지 달성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재계는 지난해 역대 최대 인상액 달성과 그로 인한 소상공인과 중소·영세 사업자 부담을 호소하며 속도조절론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는 “사회양극화 해소와 저임금 노동자 생활안정”을 내세우며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가 팽팽히 맞선 가운데 최저임금 산입범위 등 제도개선 논란까지 겹친 상황이다. 사용자위원인 이동응 한국경총 전무는 “10년째 사용자위원으로 참여했다”며 “올해가 가장 어렵고 험난한 시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노·사 위원들은 이날 첫 전원회의부터 맞섰다. 노동자위원인 이성경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지난해 최저임금을 16.4% 인상하고도 사용자들이 자체적으로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등 꼼수를 써서 인상효과가 크지 않았다”며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은 국민적 요구이자 시대정신”이라고 밝혔다.

이동응 전무는 “지난해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오르면서 사업주 부담이 커지고 고용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게 됐다”며 속도조절론을 폈다. 그는 “근로자위원들이 (최저임금을) 많이 올려 달라며 가속페달을 밟는데, 가속페달만 밟을 경우 차가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몰라) 걱정된다”며 “(사용자위원은)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경제발전과 고용안정을 위해서도 (최저임금 인상 폭) 조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구·통계에서도 고용대란 없다는데…”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감소에 영향을 줬다는 유의미한 연구 결과는 없었다. 통계청 고용 동향을 살펴봐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대규모 해고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서울시가 올해 2월 발표한 아파트 경비원 전수조사에서도 대량해고가 우려된다던 아파트 경비원들의 고용변동은 나타나지 않았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달 15일 고위당정청협의회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고용감소 효과는 분명히 없고 국내 소비 증가는 뚜렷하게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재계는 인건비 부담과 그에 따른 고용감소를 주장하며 최저임금 속도조절과 산입범위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관련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올해 최저임금 결정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1일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산입범위가 확대되면 실질적인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떨어진다. 사용자위원들은 "조속히 입법하라"고 요구했고, 노동자위원들은 "국회로 넘어간 최저임금 제도개선 논의를 다시 최저임금위에서 하자"고 맞받았다.

노동자위원인 백석근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저임금 노동자 생계문제 해결을 위해 꼼수나 산입범위 확대 없는 온전한 최저임금 1만원이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위는 31일부터 최저임금 적용실태와 인상효과 청취를 위한 현장방문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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