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SOLIDARITAT, VIELFALT, GERECHTIGKEIT!” 억지로 의역한다면 “연대, 다양성, 정의” 정도로 해석될 것 같다. 독일노총(DGB) 초청으로 정광호 한국노총 사무처장을 단장으로 21회 독일노총 총회(5월12일~5월17일)에 참석하고 있다. 우리에게 노동운동과 노동기본권 보장 선진국으로 알려진 독일 사회다. 그런 독일노총의 가장 큰 행사인 총회를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4년마다 열리고 이번이 21회째를 맞고 있다고 하니 그 역사를 알 만하다.

8개 산별노조 조합원 670만명의 거대 조직에서 선출된 대의원 400여명이 총회에 참석했다. 특히 위원장을 선출하는 대의원대회다. 거대한 행사규모에다 국제노총(ITUC)와 국제노동기구(ILO)를 비롯한 각급 조직 대표자들까지 초청한, 그야말로 노동자들의 거대한 축제와 같다. 소속 산별 중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것처럼 독일 금속노조(IG Metall)와 서비스노조(ver. di)가 각각 144명과 126명의 대의원을 파견했다. 대의원 구성에서 여성이 34%, 청년이 26%를 차지할 만큼 다양성이 보장되고 있다.

행사장 곳곳은 DGB는 물론 소속 산별과 노동조합과 인연을 맺고 있는 기관들의 홍보장이다. 에버트재단부터 독일노총법률구조회사까지 그야말로 노동을 주제로 한 커다란 엑스포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대의원대회 위상을 단숨에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대회 첫날에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사흘째는 메르켈 총리가 참석했기 때문이다. 국가 운영을 책임지는 이들이 대의원들 옆을 끝까지 지키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우리 처지와 비교하자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대의원들의 자유로운 토론은 대의원대회 근간이다. 위원장을 포함한 집행부를 새롭게 구성하는 일부 절차 외에 대회 기간 대부분은 현안과 규약에 관한 대의원들의 토론으로 메워졌다. 1주일 내내 다양한 주제를 두고 서로의 주장을 펼치고 각자의 입장을 조율해 나가는 것이 대의원대회 최종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토론문화는 더 부럽다. 상대방의 표현과 주장의 존중에서 출발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메르켈 총리가 입장할 때였다. 베르디는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펼침막을 들었다. 총리는 그냥 지나지 않고 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다. 양측의 짧은 조우 순간이지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읽힌다.

토론과정을 들으면서 비록 노동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급변하는 오늘의 노동환경에 대한 독일노총의 고민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위원장은 불안정 노동자, 즉 비정규 노동자들이 20%에 이르고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우려했다. 유럽과 독일에서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이웃나라 유랑노동자에 대한 걱정도 크다. 그에 비해 기업의 책임, 예를 들어 기업에 부과되는 세금이 턱없이 불공정하다고 지적한다. 모든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조하면서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맞서 싸우겠다고 대의원들 앞에 맹서했다. “연대, 다양성, 정의”가 현안 해결을 위한 핵심 정강임을 자신감 가득 찬 목소리로 확인해 준다.

참가한 대의원보다 당면한 노동문제 해소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 이는 대통령이었다. 각자의 정치색이 분명한 독일 사회의 모습이 반영된 이유도 있겠지만, 연설 내용만 보면 대통령은 가장 모범적인 대표 대의원이 아닌가 한다. 마르크스 출생 200주년 축하를 시작으로 “적정임금, 교섭자유의 보장”에 관한 발언까지. 급속한 정보화 상황이 가져올, 누구도 예측하기 쉽지 않은 미래의 노동과 일자리 문제에도 대통령은 깊은 이해를 보여 준다. 유머와 여유 속에서도 “노동자와 독일노총를 존중한다”고 한 메르켈 총리의 발언은 대의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우리가 봤던 그저 형식적인 인사말과는 격이 달랐다.

대통령과 총리의 노동에 대한 관심의 깊이는 상상 이상이다. 자연스레 우리의 처지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DGB에 대한 애정은 물론 미래 노동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 줬다. 무엇보다 나름의 해결방법까지 제안한다. 예를 들어 우려되는 미래의 일자리 문제 해소를 과거 경험에서 찾았다. 컴퓨터 등장 초기에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이 컸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구체적으로는 독일정부와 DGB가 함께 새로운 환경에 노동자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재고용 교육라고 말한다.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디지털화에 최적화된 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호프만 위원장의 당선 소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 노총이 예전과 같지 않아. 그때는 말이지 노총의 발언이 곧 사회적 의제가 되곤 했지. 주 35시간 노동도 노총이 주도했잖아.” 70~80년대 독일에서 유학한 어느 선배의 말이다. 실제로 조합원수도 메르켈 총리 집권 이후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조합비에 대한 부담인지, 무임승차에 대한 도덕적 회의 탓인지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 같지 못하다는 정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사회는 배울 점이 참으로 많다는 결론에 한국노총 참가자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노동’이 독일 사회를 이끌어 가는 핵심주체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회와 정부가 그들을 인정하고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노동에 긍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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