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훈 서울교통공사노조 조합원

분단 73년 만에 따뜻한 봄기운이 한반도에 피어나고 있다. 1945년 해방 이후 2개의 정부가 수립되면서 시작된 불행한 역사, 그리고 냉기로 가득했던 한반도에 이제 막 봄날의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있다. 생경해서 차라리 비현실적인 TV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먹먹함과 함께 눈시울이 붉어진다.

단순히 민족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세계 정세를 보자. 우경화와 신민족주의가 득세하는 상황이었다. 난민을 적대하고 우리끼리 잘살자는 신민족주의 정당이 전 유럽을 휩쓸었다. 트럼프와 시진핑, 푸틴의 대립을 보며 역사학자들은 1차 세계대전 직전 상황과 유사하다고 우려했다.

세계 강대국 간 충돌과 갈등의 최전선에 한반도가 있었다. 그곳에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주검위리(鑄劍爲犁, 칼을 녹여 농기구를 만드는 것) 반전의 대사건이 꿈틀거리고 있다.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들고자 했던 1천년 전 춘추전국시대 현자들의 꿈이 한반도에서 막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작에 불과하다. 시작이 절반이라는 속담이 실현되기를 지금처럼 믿고 기원한 적이 없었다.

덩달아 대통령과 집권당의 지지도는 고공행진 중이다. 정부의 평화를 위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의 극적 변화를 이끌어 낸 출발점은 촛불 탄핵이었다는 점을 말이다. 탄핵이 없었다면 대선은 2017년 12월이었을 것이고, 지금이 인수인계 기간 직후였다면 미국 중간선거라는 절묘한 타이밍을 놓쳤을 수 있다. 촛불 탄핵의 나비효과가 한국 정치를 바꾸고 세계 정세를 고립주의, 극단적 대립구도에서 평화와 연대의 정세로 바꾼 것이다. 촛불 탄핵의 나비효과로 오늘의 극적 드라마가 시작된 것이라 자부한다.

우리는 촛불 탄핵의 시작이 2015년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쳤던 민중총궐기에서 시작됐음을 잘 알고 있다. 민중총궐기는 명백하게 정당한 평화집회였다. 경찰의 다소 의도적인 과잉진압으로 인한 충돌이 있었음에도 민중총궐기로 기소된 많은 조합원들에게 연이어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차벽과 물대포에 대한 규탄과 불법성 성토는 관심에서 사라지고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여전히 감옥에 있다. 촛불에서 시작된 정부도 유독 한상균 전 위원장만은 외면하고 있다.

503 박근혜, 716 이명박, 4030 한상균. 이름 앞 번호들은 수감번호다. 박근혜·이명박과 한상균이 함께 감옥에 수감돼 있는 것이다. 한상균 전 위원장의 죄라면 박근혜 정권의 본질을 먼저 알아채고 행동한 것뿐이다. 박근혜 정권의 비상식적 노동정책과 국정운영을 가장 먼저 폭로한 것뿐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맞서 투쟁했던 한상균 전 위원장이 지금 함께 감옥에 있는 것은 한국에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상징이다.

제주 4·3 항쟁의 역사 바로잡기가 시작되고 정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전 정권에 의해 왜곡됐던 5·18 민주항쟁에 대한 명예회복이 시작되고 있다. 세월호가 인양되고 다시 조사가 시작됐다. 그렇지만 백남기·한상균 등 민중총궐기와 촛불 탄핵 바로 보기는 관심 밖에 밀려나 있다. 촛불 혁명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역사적 교훈으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역사 다시 보기가 필요하다. 한상균 전 위원장 석방은 그 출발점이다. 박근혜·이명박과 한상균이 함께 감옥에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더 이상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곧 자비로움이 세상에 퍼지는 석가탄신일이다. 잊지 말자. 한상균이 없는 봄은 아직 봄이 아니다. 한상균을 석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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