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누군가는 사탕을 가지고 출근한다. 누군가는 청양고추를 먹어 봤다. 사탕도 청양고추도 마뜩잖은 누군가는 생강을 택했다. 그 덕분에 불규칙한 식사로 앓고 있던 위장병이 심해졌다고 했다. 그들 얘기에 나도 속이 아려 오는 듯했다.

사탕·청양고추·생강은 졸음과 싸우는 경기도 버스운전 노동자들의 자구책이다. 흔히 졸음을 쫓기 위해 마시는 커피도 그들에겐 기피 대상이다. 이뇨작용이 잦은 소변을 불러와 화장실을 가는 횟수를 늘리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물도 마시지 않는 버스운전 노동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다변화된 도로교통체계와 수시로 변하는 교통상황, 빠듯한 배차시간으로 전쟁을 치르듯 운전하는 버스운전 노동자 사이에선 지극히 상식인 이야기지만 말이다. 이렇듯 당사자들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현장에서의 고충과 어려움을 반영한 해결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소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이야기만 가득할 뿐이다.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이해가 풍부하며, 해결방안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은 그곳에서 일하는 현장 노동자인데도 말이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일차적으로 청취하고, 반영하면 여러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이야기가 괜한 말이겠는가.

지난해 7월 경부고속도로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버스운전자 졸음운전이 빚은 참사였다.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 열악한 노동환경에 그 원인이 있었다. 격일제 근무를 해야 하는 버스운전자가 2일 3일씩 연속근무에 시달렸다. 버스운전자 과로는 경기도민의 안전과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했을까.

순리대로라면 경기도 차원에서 버스 운행의 주요 주체인 버스노동자, 이용자인 시민 등 이해당사자들과 안전대책을 논의하고 이를 종합해 정책방향을 제출해야 했다. 아쉽게도 이런 과정은 생략됐다. 그 대신 버스운전 노동자의 과로가 빚어낸 참극을 해결할 안전대책으로 ‘남경필표 준공영제(광역버스 우선시행)’가 발 빠르게 제출됐다. 이렇게 제출된 ‘남경필표 준공영제’는 발표 직후 광역버스 준공영제가 추진되고 있는 현재까지 일선 버스노동자들과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경기도의 버스준공영제 추진을 버스노동자들은 왜 반대할까. ‘수익금공동관리형 준공영제’라는 버스운영체제 변화가 버스회사의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할 뿐, 대형 교통사고를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인 버스운전 노동자 노동환경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경기도는 민영제 상황에서도 버스회사에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했으나, 버스노동자 처우개선은 미미했다.

버스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는 그동안 무제한 노동을 강요하던 근로기준법 59조(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와 열악한 노동환경, 고착화된 저임금에 의해 발생했다. 버스운전 노동은 기피 대상이 됐으며, 항상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렸다. 그러다 보니 낮은 임금을 벌충하기 위해, 혹은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버스운전 노동자는 회사 강요로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근기법 59조 특례업종에서 노선버스 제외와 당장의 광역버스 준공영제 시행으로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임금하락, 버스운전 인력충원 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경기도에 교통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더불어 근본적인 안전대책은 요원한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버스운전 노동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버스노동자도, 시민도 안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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