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고등학교 2학년 심태호(가명)군은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학교를 다니면서 음식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가 취업한 곳은 음식점이 아니다. 스마트폰 배달애플리케이션으로 가맹식당 배달주문을 받아 심군을 비롯한 배달원에게 전달하는 배달대행앱 업체였다.

심군이 돈을 벌려면 무조건 빨리 달려야 했다. 업무시간이나 근무장소는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업체는 스마트폰 앱에서 콜(배달 주문)이 울리면 가장 먼저 도착한 배달원에게 일을 줬다. 이른바 '전투콜 배차'다. 건당 2천500~4천500원 하는 배달수수료에 목숨을 내맡기다시피 일했다.

2013년 11월26일에도 심군은 열심히 달렸다. 친형 오토바이를 빌려 배달을 가는 길이었다. 서울 광진구 군자역 근처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와 충돌했다. 병원에서 폐쇄성 흉추 골절과 흉수 손상 진단을 받았다. 하반신이 움직이지 않았다.

배달대행앱 노동자 산재보상 길은 열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심군 사고가 업무상재해라며 산재보상을 해 줬다. 그러자 심군을 고용한 배달대행앱 업체가 반발했다. 심군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적도 없고 배달 수수료를 부담한 곳도 음식점인데 왜 심군의 산재보험료를 내야 하냐는 주장이다. 업체는 공단을 상대로 "산재보험료 부과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배달대행앱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심군이 개인사업자에 해당하므로 산재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2심 법원도 같은 판결을 내렸다. 심군은 산재보상으로 받았던 치료비까지 물어내야 할 위기에 처했다.

5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이 사건 결론(대법원 2016두49372)이 나왔다. 사건 발생 4년6개월 만이다. 대법원은 “배달대행앱 노동자는 한국표준직업분류상 음식배달원이 아니라 택배원에 해당한다”며 “원심이 음식배달원 업무라고 단정한 나머지 특수고용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한국표준직업분류에서 음식배달원은 "각종 음식점 등에서 고객의 요구에 따라 해당 요리를 특정 장소까지 배달하는 자"를 의미한다. 반면 택배원은 "고객이 주문·구매한 상품 등 각종 물품을 고객이 원하는 곳까지 운반해 주는 자"를 말한다.

대법원은 “배달대행앱 노동자는 배달요청 내역을 앱으로 확인하고 요청한 음식점에서 음식물을 받아 손님에게 배달하는 것이므로 택배원으로 보는 것이 더 잘 부합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통계청이 한국표준직업분류 세분류에서 ‘배달대행업체 배달원’을 택배원에 포함시키고 노동부도 같은해 3월 ‘퀵서비스기사 전속성 기준’ 고시를 개정해 ‘음식물 늘찬배달업체’를 포함시킨 것도 마찬가지 취지라는 설명이다.

플랫폼 노동자 노동자성 인정은 과제로

음식배달원이냐 택배원이냐는 근로자성을 가리는 데 중요하다. 똑같이 짜장면을 배달하는 배달노동자라 하더라도 음식점에 직접고용되면 근로자성이 인정돼 각종 노동관계법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택배원은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산재보상 등 일부만 적용받는다. 비난여론이 일자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배달대행앱 노동자가 특수고용직에 해당하는지 원심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라고 주문했지만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같은날 대법원은 또 다른 배달대행앱 노동자 사망사건(대법원 2017두74719)에서 "특수고용직의 전속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다른 업체 배달대행앱을 이용해 배달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 특수고용직의 전속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김수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배달대행앱 노동자의 산재가 인정된 것은 다행스럽지만 대법원이 여전히 ‘사용자 지휘·감독’에 얽매여 신종 플랫폼사업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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