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봉창 변호사(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18.3.23. 선고 2017구단29217


1. 사건의 개요

박아무개씨는 2015년 7월께 학원 운영자와 차량수송위탁계약을 체결하고, 학원 수강생을 운송하는 업무를 했다. 박씨는 2016년 5월7일 자신의 숙소에서 쓰러진 후 119구급차에 의해 근처 병원으로 후송돼 상세불명의 폐렴, 급성호흡부전1형(저산소성), 기타 및 상세불명의 원발성 고혈압이라는 진단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았다. 이에 대해 박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박씨를 위탁계약에 기한 사업자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고, 상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2017년 6월23일 요양불승인 처분을 했다. 박씨는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2. 판결의 요지

(1) 박아무개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여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보호대상으로 삼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사안의 경우 ① 학원은 셔틀버스 운전기사들을 대표하는 사람을 지정해 그 사람을 통해 셔틀버스 운전기사들의 운행노선 등을 지시했는바 박씨는 학원이 지정한 사람을 통해 학원의 지휘·감독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② 학원은 박씨에게 매월 일정한 금액의 위탁수수료를 지급하고, 실비변상조로 유류보조금도 지급해 왔다. ③ 학원 대표는 박씨 차량에 공동소유자로 등록하고, 위 차량을 어린이통학버스로 신고했으며 박씨는 수강생의 승하차를 위해 차량 승차장치 구조를 변경하기도 했다. ④ 박씨는 학원 학사일정에 따라 차량을 운행해야 했으므로 근무시간 내에 차량을 이용해 다른 영업행위를 하거나 임의로 차량운행을 휴무할 수도 없고,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체하게 하는 것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다. 차량수송위탁계약서에도 제3자의 차량운행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

결국 법원은 위와 같은 사정에 근거해 박씨는 학원에 대해 종속적인 관계에서 자신 소유의 차량과 함께 근로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대한 임금을 받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2) 업무상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

가) 상세불명의 폐렴, 급성호흡부전1형(저산소성)의 경우

폐렴은 폐에 세균이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으로 발열·기침·객담 그리고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고령은 폐렴 위험인자다. 급성호흡부전1형은 혈중 산소가 현저히 감소되지만 이산화탄소는 증가되지 않는 것을 말하며, 발병원인으로는 폐렴·급성호흡장애증후군 등이 있다. 또한 진료기록감정회신서상 감정인은 폐렴 등은 고령이 위험인자임을 진술했다.

법원은 박아무개씨의 업무 특성상 자동차 매연 등의 외부 환경에 장기간 노출됐을 뿐만 아니라 셔틀버스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여러 수강생을 접촉했을 것으로 보이는바, 박아무개씨가 셔틀버스를 운행하면서 폐렴 원인균에 노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박아무개씨는 통상 1주일에 6일을 근무했고, 근무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후 3시50분부터 밤 10시20분까지, 토요일에는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였으며, 식사 등을 할 수 있는 휴식시간이나 휴식장소가 별도로 주어지지는 않았는바 근무일수, 시간 및 형태, 만 78세의 고령을 고려할 때 업무와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나) 기타 및 상세불명의 원발성 고혈압의 경우

박씨가 평소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었던 사정 등에 비춰 볼 때 이 사건 상병 중 기타 및 상세불명의 원발성 고혈압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3. 이 사건의 의미

현재 대부분 학원들이 학원차량을 박아무개씨가 맺은 것처럼 차량수송위탁계약 형태로 운영하는바 박씨와 같은 학원차량 운행자들이 근로자로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보호대상이 될 수 있는지 문제가 됐다. 위탁계약은 근로계약이 아니라며 근로자로 보지 않는 판례나 근로복지공단 결정례 등이 많이 있었다.

1심 법원의 판결이기는 하나 학원 셔틀버스 기사가 학원과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계약을 맺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사정상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서 근무한 경우 근로자성을 인정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보호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 의미 있는 판결이다. 또한 학원은 의무적으로 영유아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일명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만 13세 미만 어린이가 다니는 유치원과 어린이집·학원·체육시설 등의 어린이 통학차량은 어린이용 안전띠와 안전 발판을 설치하는 등 규정에 맞게 차량 구조를 변경해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 세림이법은 2013년 충북 청주에서 당시 세 살이던 김세림양이 통학차량에 치여 숨지면서 그해 말 국회에서 의결한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의무 강화 도로교통법이다. 지난해 1월 전면 시행됐다. 이러한 내용도 사안의 근로자성 인정의 논거가 됐는바 개정 도로교통법 취지에도 부합하는 판결로 보인다.

그리고 인과관계 판단에 있어서도 본 판결은 고령인 근로자의 건강상태를 구체적으로 고려한 판결로서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 취지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판결이다. 산업재해 관련 소송에서 현실적으로 인과관계를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하기는 어려운바 단순히 의학적 감정결과에 기속되는 것이 아닌 근로자 건강상태, 질병 원인, 작업장 상태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인과관계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판결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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