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기자

“과거에는 정부가 ‘임금 가이드라인’으로 통제했다면 지금은 현대자동차 같은 재벌대기업을 앞세워 변형된 형태의 임금 가이드라인을 적용합니다. 원청이 100이면 중소기업은 80, 비정규직은 70 이런 식으로 임금격차가 벌어져요. 그래서 금속노조가 하후상박 연대임금론을 들고나온 거예요. 앞으로 30년간 꾸준히 추진할 겁니다. 우리 세대에서 완성할 수는 없어도 손자세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받는 체계를 만들어야죠.”(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하도급 거래질서 확립과 연대임금 실현 : 자동차산업에서 새 길을 찾다’를 주제로 공동토론회를 열었다. 문성현 노사정위원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하부영 현대차지부장과 강상호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노동시장 양극화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며 “원·하청 간 불공정거래 관행을 뿌리 뽑고 장기적 관점에서 연대임금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완성차 임금, 다른 나라 비해 높지 않다”
임금격차 원인은 불공정 하도급 거래


‘자동차산업 하도급 거래실태와 임금격차 현황’을 발제한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하도급 거래는 자동차산업을 포함한 주력산업 전반에 걸쳐 고착화돼 있는데 그 중심에는 전속거래가 존재하며 하청업체가 매출액 80% 이상을 모기업에 의존할 정도로 수직계열화 구조를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속거래는 대기업이 중소 협력사에 다른 경쟁사와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관행이다. 수직계열화는 노동자 임금격차를 조장한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자동차·트레일러 업종의 임금격차는 300인 이상 사업장 대비 100~299인 사업장은 51.5%, 30~39인 사업장은 40% 수준이다. 10~29인 사업장은 300인 이상 사업장의 40.6%, 5~9인 사업장은 35.8%에 불과하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완성차 임금수준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결코 높은 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6년 미국 제너럴 모터스(GM) 본사를 방문한 뒤 완성차 공장 간 임금수준을 비교했다. 한국지엠의 평균 연봉은 7만3천758달러(8천559만원)다. 미국에서 임금이 가장 낮은 오리온타운십공장(10만달러)보다 적다. 페어팩스공장은 14만달러가 넘고 햄트랙공장이나 로즈타운공장도 12만달러를 웃돌았다. 한국 현대차는 한국지엠보다 약간 높은 8만달러 수준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임금격차는 원청이 하청업체 원가 임률까지 정하는 잘못된 원가계산 탓에 발생한다. 이로 인해 현대차와 현대차 계열사는 최근 7년간 영업이익률이 6~9%를 유지했지만 전속 협력업체는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6년에는 3%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부품업체 영업이익률이 완성차업체를 웃도는 세계적 추세와 상반된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자동차산업은 지난 20년 가까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상당한 고용을 창출했지만 일자리 질 측면에서는 소수 초우량 일자리와 다수의 나쁜 일자리로 양극화하는 아쉬움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불공정 하도급 거래에 대한 일벌백계식 단속 강화는 일시적인 효과를 낼 뿐”이라며 “연대임금을 위한 실천전략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낙수효과’에 의존해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으로 중소기업 지불능력을 회복하면 임금격차가 축소될 것이라는 기존 이론을 뒤집어 임금격차 축소를 중심에 두고 이에 맞춰 지불능력과 생산성을 끌어올리자고 제안했다. 예컨대 현재 '원청 : 1차 하청 : 2차 하청=1억원 : 6천만원 : 3천만원' 임금수준을 30년 후인 2028년에는 '1억3천439만원(100%) : 1억751만원(80%) : 8천63만원(60%)'에 이를 수 있도록 공동 목표를 정하고 이에 맞는 전략을 짜자는 주장이다. ‘생산과 분배의 동시 혁신’이 연대임금 전략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금속노조 하후상박 연대임금 추진

강상호 기아차지부장은 “회사가 단체협약만 잘 지켜도 투명경영과 공정거래가 가능하다”며 “노조가 경영에 참여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이행을 강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강 지부장은 “26년째 기아차를 다니는데 임금이 6천600만원이고, 성과급이 연 2천만~2천500만원으로 합쳐서 9천만원 수준인데 과연 고임금에 해당하는지 묻고 싶다”며 “광주에서 개념도 정립하지 않은 채 양질의 일자리 도입을 이야기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고임금 정규직이 양보하라"고 밀어붙이는 게 불편하다는 얘기다.

하부영 현대차지부장은 “공정사회를 국정방향으로 제시한 문재인 정부의 성공 여부는 공정거래위가 좌우할 것”이라며 “공정거래위에 자율조정·협의권이 아니라 수사권·제소권·강제조정권을 줘서 재벌갑질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 지부장은 “한국의 임금격차와 임금체계 왜곡은 정부의 잘못된 임금정책 때문”이라며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하는 임금정책을 깨기 위해 하후상박 연대임금을 들고나왔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지부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기본급 대비 정규직은 5.3%, 사내하청은 7.4% 인상을 요구하고 납품계약 임률을 현재 1만8천원에서 7.4% 인상한 1만9천332원으로 조정하자고 요구했다.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은 “건설사의 경우 관련 협회에서 원가를 계산하고 이를 기초로 입찰이 진행된다”며 “자동차산업도 공정기준 단가를 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이를 관장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판매가 기준으로 납품단가를 매기는 방식처럼 계량화된 수치가 있어야 납품단가 후려치기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날 문성현 위원장과 김상조 위원장은 토론회 끝까지 자리를 지켜 눈길을 모았다. 문 위원장은 “토론회가 단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 격차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화 활성화와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에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경기침체·구조조정에 따른 부담이 중소기업에 전가될 우려가 있어 이 분야에 대해 선제적으로 직권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중소기업이 일한 만큼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대기업이 하도급대금 결제조건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납품 단가를 깎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영정보 요구 행위나 부당한 특약 유형을 고시하는 등 중소기업의 ‘하도급대금 제값 받기’를 위한 제도개선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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