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Human Rights Plans of Action·NAP) 초안을 공개했다. 2007년 NAP 수립 이후 처음으로 ‘인권경영의 제도화’가 담겼다. 최근 한진그룹 총수 일가 갑질이나 삼성반도체 직업병 사건처럼 반인권적 기업경영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터라 기본계획에 이목이 쏠린다. 그런데 초안에 담긴 인권경영 제도화 내용이 관련부처 홈페이지에 내용을 게시하거나 경제단체를 통한 홍보를 추진한다는 수준이어서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명무실한 인권경영 제도화

29일 법무부가 공개한 ‘2018~2022 제3차 NAP’ 초안에는 정책과제로 7개 항목을 제시했다. 생명권처럼 천부인권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의 생명·신체를 보호하는 사회를 비롯해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 △모든 사람이 기본적 자유를 누리는 사회 △모든 사람이 정의 실현에 참여하는 사회 △모든 사람이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사회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사회 △인권의식과 인권문화를 높여 가는 사회다.

기업의 인권경영은 '인권의식과 인권문화 높여 가는 사회'에 담겼다. 기본계획은 기업의 인권경영을 “기업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기업 활동이 인권친화적으로 수행됨으로써 우리 사회 인권신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마련된 국가의 실천계획”으로 규정하고 ‘인권경영의 제도화'를 세부 내용에 포함시켰다.

제도화 책임은 외교부와 고용노동부에 부과했다. 기업인권 존중책임 확보를 위해 "기업의 인권 이행을 위해 기업에 유효하게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라"는 것이다. 기업은 유엔의 기업과 인권이행지침을 따르고 협력회사에서도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정부는 이에 필요한 지원과 법률·정책·제도를 정비한다는 내용을 외교부나 노동부 홈페이지에 실으라는 내용이다. 경총을 비롯한 경제단체가 이와 관련한 홍보를 진행한다는 것도 계획에 포함됐다. 인권경영 제도화에는 이 밖에 △생활제품의 소비자안전 확보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공공조달 정책 △다자간 국제기구에서 인권보호 등이 명시됐다.

문제는 인권경영 정책과제 대부분이 선언적 수준이어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정부가 독자적인 ‘기업과 인권 NAP’를 수립하라”고 권고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인권위가 제시한 인권경영의 핵심방안은 인권침해 문제를 일으킨 기업에 정부 정책금융·공공조달에 불이익을 줘 기업의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인권 관련 정보 공시제도를 도입하거나 수출 관련 신용·정책금융 제공이나 투자 때 해당 기업의 인권적 측면을 고려하고 공공 조달에 인권을 고려하는 제도·절차를 마련하라는 내용이다. 기업과 인권 NAP는 이미 영국 등 10개국에서 만들어졌고, 미국 등 19개국은 추진 중이다.

‘노조할 권리’ 빠진 노동권 분야

법무부가 이번에 공개한 초안에는 노동권 분야도 30쪽 넘게 실렸다. 그런데 해고자의 노조가입 금지 조항 폐지 등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위원회(사회권위원회)가 권고한 내용은 빠졌다. 인권운동단체들은 “NAP 초안에서 노동권 분야는 노동권 증진계획이라기보다는 노동부의 일상 업무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해고자 노조가입 금지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유엔 사회권위원회 권고 이행 방안은 어디에도 언급돼 있지 않다”며 “‘사내하도급 노동자’‘특수형태 업무종사자 보호’ 항목에서도 노조할 권리 확대 방안은 누락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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