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경식 경총 회장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취임 50일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한국경총>

삼성 노조와해 문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26일 한국경총을 압수수색해 재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2013~2014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들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아 금속노조와 협상했던 경총이 삼성과 부당노동행위를 공모한 것으로 밝혀지면 파문이 확산될 전망이다.

손경식 회장 “국민께 송구, 교섭권 위임 문제 없어”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 노사대책본부를 압수수색해 각종 문서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확보했다. 검찰은 삼성 노조와해 문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의 교섭을 지연하기 위해 경총에게 교섭권을 위임한다는 내용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교롭게도 같은날 오후에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손경식 회장 취임 50일 기자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손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오늘 같은 일이 생겨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조사가 진행 중이니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압수수색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교섭 지원과 관련해 우리 직원들이 한 일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노사교섭을 (위임받아) 한 사실은 있으나 문제가 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고 보고받았다”고 덧붙였다.

2014년 블라인드 교섭, 삼성 미래전략실 개입 정황

경총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교섭권을 처음 위임받은 것은 2013년 9월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같은해 7월 출범하자마자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에 임금·단체교섭을 요구했고, 그때부터 삼성전자서비스는 경총에 교섭권을 위임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확보한 삼성의 노조와해 문건 마스터플랜은 2013년 7월께 작성됐는데, 이 문건에 경총에 교섭권을 위임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교섭은 순조롭지 않았다. 지회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 영등포센터와 양천구센터를 포함한 일부 센터장들이 교섭을 회피하다 부당노동행위로 사법처리됐다. 2013년 10월31일 삼성전자서비스 천안두정센터에서 일하던 고 최종범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교섭이 진행됐다. 같은해 12월 노사는 최종범 조합원 사망에 대한 사측의 유감표명, 월급제 시행을 위한 성실한 임단협 교섭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듬해 시작된 임단협 교섭은 다시 난항을 겪었다. 경총은 월급제와 관련해 별다른 안을 내지 않았다. 지회는 그해 4월 교섭결렬을 선언했다. 그러던 중 같은해 5월17일 염호석 지회 양산분회장이 자결했다.

이를 계기로 경총에 위임했던 교섭은 이른바 ‘블라인드 교섭’으로 전환됐다. 최종 합의한 6월28일까지 블라인드 교섭이 계속됐다. 블라인드 교섭은 교섭석상에 나온 교섭위원들이 다른 장소에 있는 실질적인 당사자 의견을 들어 교섭하는 형태를 말한다. 당시 교섭은 교섭위원 명단을 철저하게 비공개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 교섭에 삼성그룹 핵심 관계자들이 개입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회 관계자는 “당시 교섭위원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경총 관계자만 참석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2014년 6월 삼성전자서비스 교섭과 관련한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보고서에는 “삼성 미래전략실의 인사파트(제1 라인)와 대관파트(제2 라인)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교섭 과정에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1 라인은 블라인드 교섭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검찰이 “경총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과 협의해 교섭을 의도적으로 지연했다”고 의심하는 배경이다. 지회 관계자는 “경총이 삼성그룹과 공모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교섭이 지연된 것은 사실이었고, 그에 대한 책임은 경총에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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