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늦은 벚꽃 바람에 날려 마석 모란공원 오솔길이 꽃길이다. 노조 조끼 입은 사람들이 그 길 따라 올랐다. 손에 든 비닐봉지엔 사과와 배, 소주 따위 제수가 들었다. 길옆으론 진달래가 피었다. 꽃 떨군 자리에는 연초록 새잎이 돋아나 봄볕에 반짝거렸다. 무덤가에도 봄이 깊었다. 일행은 검은 비석 앞에 머물러 절을 했다. 소주를 따랐다. 종범아 맘 편히 먹어라, 약속 지켰다. 노조 지회장이 혼잣말했다. 비석에 새긴 사진이 참 이상하지 않냐고 물었다. 이쪽저쪽에서 봐도 자기를 쳐다본다는데, 사진기 든 사람들 답이 흐릿해 또 혼잣말에 그쳤다. 비석을 잡고 불룩 솟은 무덤을 한참 살폈다. 대답 없는 혼잣말을 이어 갔다. 검은색 서류철을 무덤 앞에 뒀다. 거기 합의서에 회사는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 고용한다고, 또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고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들었다. 오랜 구호였다. 등에 매달고 목청에 새긴 말이었다. 먼저 간 동료의 유서 내용이었고, 비석에 새긴 바람이었다. 오랜 혼잣말이었다. 호석이 찾는 일이 남았다. 종범아 네가 도와줘라. 혼잣말하던 지회장이 남은 소주 몇 잔을 무덤 여기저기에 끼얹었다. 지붕에 나팔 모양 스피커 달린 승합차 타고 노조사무실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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