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서용진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충남사무소)

시설관리 용역업체인 A사의 취업규칙상 정년은 만 63세였다. A사는 2016년 9월1일부터 B대학에서 시설관리 도급을 맡았다. 기존에 B대학에서 일하던 C사 소속 근로자 전원을 고용승계하게 됐다. 결국 C사 소속 근로자들은 A사에 2016년 9월1일 입사하게 된 것인데, A사가 2016년 9월1일 이후에 정년을 만 60세로 규정한 취업규칙을 만들었다면 이는 취업규칙 제정(작성)인가? 불이익변경인가?

최근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한 사건의 사실관계와 핵심쟁점이었다. 근로기준법 94조1항은 취업규칙을 새롭게 작성(제정)하거나 불리하지 않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근로자 집단(과반수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청취만 하면 되고,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근로자 집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판례는 취업규칙을 제정하거나 불이익하지 않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근로자 집단의 의견청취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효력이 인정된다고 보고 있으므로(대법원 1999.6.22. 선고 98두6647 판결), 근로자 집단의 회의방식에 의한 동의를 제대로 받지 않은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정년 만 60세 규정의 취업규칙 작성이 취업규칙 제정인지, 불이익변경인지 여부였다.

대전지역 언론에 수차례 보도됐던 이 사건은 B대학이 새로운 도급업체인 A사에게 도급조건으로 '시설관리 노동자 정년 만 60세'를 요구하면서 시작된 분쟁이었다. A사가 정년을 만 60세로 규정한 것이 취업규칙 제정이라고 주장하면서 만 60세가 넘은 한 노동자를 해고함으로써 큰 문제가 된 사건이었다.

우선 기존에 C사 소속이었던 노동자들은 2016년 9월1일에 A사에 고용승계돼 근무를 했으므로 A사와의 근로관계 성립일은 2016년 9월1일이다. 이날 A사의 기존 취업규칙(정년 만 63세)이 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A사가 2016년 9월1일 이후인 2016년 9월12일부터 근로자들의 동의를 받아 작성했다고 주장하는 '정년 만 60세' 취업규칙은 취업규칙의 제정이 아니라 근로자들의 기득의 이익(만 63세까지 근무할 수 있는)을 박탈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

만약 A사 주장처럼 정년 만 60세 취업규칙 작성이 취업규칙의 제정으로서 효력을 발생하려면 근로관계 개시일인 2016년 9월1일 이전에 취업규칙을 작성해 두고 그 내용에 관해 고용이 승계돼 새롭게 입사한 근로자들에게 주지하는(알리는) 절차가 필요한데(대법원 2004.2.12. 선고 2001다63599 판결), A사는 아무런 주지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특히 A사는 취업규칙상 정년 규정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면서 그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근로계약서 뒤에 은근슬쩍 끼워 넣는 방식으로 동의서명만 받았다. 판례(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7다209129 판결)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내용에 대해 공고 및 설명 절차, 집단적 회의방식에 의한 동의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무효가 된다고 보고 있으므로 A사의 정년 규정 불이익변경은 무효다.

따라서 A사가 만 60세 정년 취업규칙을 유효하게 제정했다고 주장하면서 만 60세를 넘은 노동자에게 정년만료 통보를 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중앙노동위는 부당한 해고가 아니라 정당한 정년만료 통보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하고 말았다.(중앙노동위 2018.2.9. 판정 중앙2017부해1218/부노218병합)

중앙노동위는 A사가 정년 만 60세 취업규칙을 작성한 것이 취업규칙의 제정인지, 불이익변경인지에 관해 법리적으로 판단조차 하지 않고, A사가 원청인 B대학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취업규칙을 신규 제정한 것이라고 단정해 버린 후 부당한 해고가 아니라는 판정을 했다. 결국 법리적인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황판단(사용자인 용역업체 상황을 이해해 주는)을 한 것이다.

중앙노동위처럼 동의절차를 요하지 않는 취업규칙 제정을 넓게 인정한다면, 사용자가 일부 직급·부서·작업현장에 별도로 적용되는 불이익한 규정을 만들면서 취업규칙 제정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실질적으로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면서 제정이라고 주장해 결국 집단적 회의방식에 의한 동의를 엄격히 요하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법리를 회피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중앙노동위는 노동법 법리에 입각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여부, 불이익변경시 요구되는 절차, 해고 정당성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기관이지, 용역업체가 원청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등의 사용자 사정을 헤아려 주는 기관이 아니다. 부당해고된 노동자를 구제해 주는 기관인 중앙노동위가 노동법 법리에 입각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근로관계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노동자 생존권이 위협받게 된다.

중앙노동위가 이렇게 비법리적이고 사용자 편향적인 정황판단을 하는 동안 부당하게 해고된 2명의 노동자들은 지금도 160일 넘게 대학 캠퍼스 바닥에서 처절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당사자와 노동조합은 중앙노동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행정법원의 올바른 법리해석에 입각한 판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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