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넷마블게임즈는 포털과 게임업계의 양대 산맥이다. 두 기업 모두 수평적 조직문화와 활발한 의사소통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일을 통한 즐거움과 자기계발을 추구하는 ‘덕후’들이 모였다고 자평한다. 포털과 게임에 익숙한 청년들에게 두 기업은 선망의 대상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꿈의 직장에서 최근 균열이 일어났다. 이슈를 몰고 다니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GIO(글로벌투자 책임자)와 권영식 넷마블게임즈 대표이사 얘기가 아니다. 지난 2일 창립을 선언한 네이버노조가 주인공이다. 정확히 말하면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네이버지회가 뜨면서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네이버 설립 19년 만에 노조가 설립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노조 불모지대인 정보통신기술(IT) 신생 노조가 회자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사무전문직 직장인들은 네이버지회 창립 배경에 촉각을 곧두세운다.

“네이버에서 일하는 조합원은 일의 대가가 포괄임금제로 주어져 자다가도 새벽에 밴드로 업무지시를 받았고, 심지어 휴가 가서도 지시를 받고 일해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사무전문직 노동자는 ‘포괄임금제’라는 대목에서 공감한다. 포괄임금제란 초과·휴일노동시간을 사전에 정하고 그에 따른 수당을 임금에 합산해 지급하는 임금제도다. IT 업계뿐 아니라 사무전문직이라면 대부분 포괄임금 계약에 묶여 있다. 포괄임금 계약은 ‘공짜 야근’ 혹은 ‘무료 노동’으로 불린다. 경계가 사라진 일과 가정, 밤샘근무를 당연시한다. 노동조건 개선을 내건 네이버지회 설립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왜 네이버일까. 장시간 노동 실태를 고려하면 노조설립 1번지는 대형 게임업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미 넷마블게임즈는 노동환경의 민낯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해 5월 고용노동부는 넷마블게임즈와 계열사를 포함한 12곳을 대상으로 두 달 동안 기획근로감독을 벌인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업체에서 일한 노동자의 63%가 주 58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했다. 연장근로수당·퇴직금 과소산정을 통해 2천500여명에게 44억2천925만원의 금품을 주지 않았다. 게임업계에선 통상 ‘크런치 모드’라는 관행으로 장시간 노동을 요구한다. 게임 출시 직전 완성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개발자에게 과중한 업무가 쏠리는 것을 가리킨다.

게임업체들은 사전에 약정한 연장근로시간에 한해서만 수당을 지급하는 포괄임금 계약으로 수당지급을 회피했다. 뿐만 아니다. 포괄임금계약에 명시된 노동시간 이상을 일했는데도 추가수당을 주지 않았다. 노동부는 넷마블게임즈와 계열사에 체불임금 지급을 포함한 법 위반 시정명령을 내렸다.

사실 넷마블게임즈와 네이버는 장시간 노동의 쌍생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이버에서 노조 깃발이 먼저 올랐지만 ‘전조’로 읽혀진다. 네이버를 필두로 한 노조설립 도미노 현상이 게임업계에서는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게임업계 종사자 84%가 야근과 밤샘근무를 번갈아 하는 크런치 모드를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네이버는 기폭제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은 IT업계에 만연한 포괄임금 계약과 장시간 노동이다.

IT 대기업에서 노조설립은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불안정하다는 방증이다. 도화선이 된 전근대적인 포괄임금 계약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공짜 야근과 무료 노동이 지배하는 문화에서는 IT 업계 미래가 암울하기 때문이다. 노사는 장시간 노동 문화를 개선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네이버 노사가 앞장서 줬으면 한다.

IT업계뿐 아니라 노동시간이 분명한 일반 사무직 노동자를 상대로는 포괄임금 계약을 금지하는 제도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포괄임금 계약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를 비집고 들어온 나쁜 관행이다. 게다가 포괄임금제를 악용하는 사업주를 규제할 방안도 없다.

노동부가 6월 포괄임금 계약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 하지만 행정지침에 불과한 가이드라인만으로 독버섯처럼 자라난 포괄임금 계약을 억제할 수 있을까.

국회에는 이찬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포괄임금을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현행 근기법 사각지대를 메우는 이런 법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근본적인 개선에 관한 의견도 모아야 한다. 모처럼 네이버지회 설립으로 집중된 관심이 포괄임금 계약과 장시간 노동관행 개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