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많은 일터에서 작업환경측정을 한다. 소음·분진·유해화학물질 등 건강상 문제를 야기하는 유해인자에 노동자가 얼마나 노출되고 있는지를 측정·평가해 개선하기 위해서다. 작업환경측정은 쾌적한 작업환경을 마련해 노동자가 일터에서 생산적인 삶을 살아가며 건강을 유지·증진하도록 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작업환경측정 결과 현장에서 건강상 문제를 일으키는 유해인자가 기준치를 초과해 노출된 것이 확인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유해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대체·격리·밀폐, 차단·환기 등 공학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면 작업시간이나 휴게시간 조절, 교대 횟수 늘리기나 작업전환 실시 같은 행정관리대책을 통해 유해요인에서 노동자를 보호·예방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 이조차 쉽지 않다면 유해성에 대한 안전보건교육과 보호구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 이런 개선대책을 노사가 논의하고, 이 과정에 현장 전문가인 작업자 의견이 충실히 반영된다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3월 중순 충북 영동 유성기업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회사는 2017년 12월 작업환경측정을 했다. 그 결과 공장 일부 공정에서 발암물질인 유리규산이 기준치를 초과해 노출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유리규산은 폐암과 폐질환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노사는 올해 2월 말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었다. 회사는 2주 안에 개선책을 내놓기로 했다. 이로써 ‘작업환경측정→결과에 따른 개선 논의→현장 개선’으로 순조롭게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회사는 2주가 경과했는데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개선에 아무런 진척이 없자 노조는 해당 부서 노동자들과 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공유한 후 3월14일 부서장 면담자리를 마련해 즉각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부서장은 자신에게 책임과 결정 권한이 없다고 답할 뿐이었다. 아무 대책 없이 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노동자들이 즉각적인 작업중지를 요구했지만 부서장은 외면했다. 대책이 없자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휴식시간을 늘려 업무를 진행했다. 부서장은 징계 등을 거론하며 "가만히 일하라"고 강요했다.

노조는 3월15일 고용노동부의 위험상황신고전화로 해당 상황을 알리고, 즉각적인 지도·감독과 행정조치를 요구했다. 또한 작업중지권을 발동하고 작업대피를 실시했다. 발암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해 노출되는 현장에서 가만히 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데 위험상황신고전화를 접수한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청주지청은 출장을 이유로 출동하지 않았다. 노사가 원만히 문제를 해결하라고 의견을 전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3월19일 뒤늦게 현장에 출동했다.

결국 3월15일 실시된 노동자들의 작업중지와 작업대피는 같은달 19일 임시산업안전보건위 논의와 합의로 마무리됐다. 주요 내용은 △국소배기 장치 보수 △유해위험성 안전교육 실시 △최고 사양으로 해당 공정 작업자 마스크 교체 △작업 후 휴식시간 20분 보장 △이후 작업환경측정 결과에 따라 노출 문제가 없다면 정상근무다.

그러나 문제가 남았다. 회사측이 노동자들의 작업중지와 작업대피를 무단 작업이탈로 간주해 ‘무노동 무임금’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작업대피에 대해 징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구두지시를 내렸지만 회사는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당할 뿐이다.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작업환경측정, 위험상황에 무용지물인 위험상황신고전화, 무력한 노동부 행정지도, 스스로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의 작업대피와 작업중지조차 허락하지 않는 현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둔 지금, 여전히 노동현장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이 횡행하고 있다. 살고자 하는 본능을 억눌러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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