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관뒀지만 3년 정도 주말농장에 나간 적이 있다. 그 시절, 함께한 어르신은 “무릇 농사는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하셨다. 대학 농촌활동 경험이 전부인 초보농군은 어르신 얘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주말농장에 참여하는 이들이 개설한 인터넷 대화방에 가 보니 궁금증이 풀렸다. 조상들은 ‘심는 시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작물마다 수확을 최대로 할 수 있는 시기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심는 시기는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 된다. 음력에 맞춰 체험적으로 결정한다. 태양주기를 24절기로 나누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에 작물을 심는다. 춘분에는 벼를 심고, 추분에는 배추와 무 씨앗을 뿌리는 식이다. 주식인 벼를 심는 시기는 음력으로 2월 중이니 양력으로 치면 3월 말에서 4월 중순쯤이다.

노사정이 이달 3일 중요한 의견접근을 이뤄 냈다. 사회적 대화기구 명칭과 얼개에 관해 입을 모았다. 명칭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유력하다. 참여주체도 확대한다. 기존 노·사·정·공익으로 이뤄진 본회의가 좌우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청년·여성·비정규직과 중견·중소기업·소상공인이 새로 참가한다. 본회의 신규 구성원은 의결권을 받는다. 신규 구성원의 대표성을 어떻게 갖출 것인지가 쟁점이다. 본회의 구성원인 한국노총·민주노총, 한국경총·대한상공회의소처럼 확실한 대표체가 없어서다.

의제별·업종별 위원회는 확대·강화한다. 4차 산업혁명과 산업안전, 사회안전망과 관련한 의제별 위원회가 새로 꾸려진다. 업종별 위원회는 양대 노총 산하 산별연맹(노조)을 포괄한다. 해운·버스운송·금융·공공·자동차·조선·민간서비스·보건의료·건설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회적 대화기구 안에 초기업단위 노사협의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 양극화 해소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연구회’가 별도로 구성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올해 1월31일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첫 회의를 시작한 이래 노사정이 두 달여 만에 사회적 대화기구 밑그림을 그린 셈이다. 비유하면 사회적 대화 농사를 지을 농군을 확정하고, 어떤 작물을 심을지를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여러 업종별 작물반도 구성하고, 농사법도 정했다. 노사정 중심 합의지향 협의기구 대신에 노사 중심성을 기반으로 열린 농법을 지향한다. 이런 얼개를 중심으로 노사정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다.

그런데 왠지 허전하다. "무릇 농사는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얘기가 떠올라서다. 사회적 대화의 세 요소는 주체·의제·일정이다.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대화할지 정해야 한다. 노사정은 주체·의제만 정한 듯하다. 작물은 심는 시기가 중요함에도 사회적 대화 농사 일정이 거론되지 않았다.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처럼 시기를 못 박고 합의를 종용하던 구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충분한 사회적 대화 없이 정부가 주문하는 합의안에 서명하는 식의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일정 없이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것은 너무 느슨한 태도다.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기구 개편안에 합의하더라도 국회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 그래야 공식적인 사회적 대화의 장이 열린다.

국회와 정치일정을 고려하면 사회적 대화가 복잡하게 꼬일 수 있다. 국회는 5월 상임위원회를 새로 구성한다. 노사정이 주목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과 소속 위원은 이 시점에 다시 선출된다. 6월에는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예정돼 있다.

노사정이 4월에 사회적 대화기구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5월 이후에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다. 사회적 대화기구 개편안을 4월에 국회에 제출하는 것이 전제다. 그러지 않으면 국회와 정치일정상 사회적 대화는 하반기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모처럼 노사정이 의견접근을 이뤄 냈음에도 빛이 바랠 수 있다.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세심한 고려를 했으면 한다. 국회와 정치일정은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언제까지 노사정대표자회의라는 임의기구에서 논의할 수도 없지 않나. 사회적 대화 농사도 심는 시기와 수확 시기를 정해야 한다. 노사정은 대화 주체 간 의견을 접근할 수 있는 추진일정을 서둘러 마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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