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한국 사회에서 대형마트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공간이다. 아침마다 집을 나서는 길에도 먼발치에 이마트가 보인다. 지난달 28일 바로 그 이마트에서 한 청년이 일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필요한 것을 사러 오가는 친숙한 공간이 죽음의 공간으로 변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목숨을 잃은 청년이 특성화고 졸업생이라는 점은 가슴 아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2년 만에 발생한 일이다. 지난해 제주에서, 전주에서 있었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죽음이, 그리고 재작년 구의역 사고가 포개진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일터의 위험에 내몰렸던 다른 청년들처럼 이번 사고에서 목숨을 잃은 청년도 넉넉지 않은 집안 환경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일구고 집에 보탬이 되겠다는 결정으로 특성화고에 진학하고, 고교 졸업 후 취업했다. 아마 부모님과 두 동생을 생각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고인의 죽음을 생각하면, 고졸 취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허망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지 남들보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다는 이유로 박봉을 받으며 더욱 위험한 일터에 들어가야 할 이유는 없다.

올해 1월3일 한 젊은 웹디자이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고 장민순씨는 인터넷 강의업체 에스티유니타스에서 디자인 업무를 담당했다. 증언에 따르면 4명이 맡았던 업무를 1명에게 몰아줬다고 한다. 지극히 ‘한국적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퇴근시간이 없다.” “야근이 당연시된다.” 구직사이트 잡플래닛에 일했던 사람들이 올린 악평이다. 크레딧잡에 따르면 700여명 규모의 회사에서 1년 동안 퇴사자가 198명이나 된다. “하루면 되는 일이다. 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낼 것이다.” “이렇게 할 거면 왜 시간을 줘야 하지?” 모멸적인 언어를 들으며 울다 지쳐 잠이 들었던 고인의 업무일지에는 “제가 얼마나 기계적으로 업무를 했는지 부끄러웠습니다” 혹은 “지치지 않고 제대로 된 아웃풋을 내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과로와 반복되는 수정 지시,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를 업무일지에 반강제로 적어야 했을 것이다. 업무일지를 적으면서 고인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에스티유니타스는 공단기·영단기·스카이에듀 등 유명 교육상품으로 급성장해 6년 만에 교육업계를 평정한 회사다. 취업 준비를 하는 청년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교육 콘텐츠다. “꿈꿀 수 있다면, 이룰 힘도 이미 있다.” 에스티유니타스가 운영하는 ‘커넥츠 공단기’ 페이스북 페이지에 쓰여 있는 문구다. 고인 업무에는 아마 이런 디자인 업무도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미지 뒤에서 야근에 시달리며 일했을 직원들과 모멸적인 직장문화를 생각해 보면 이 회사가 청년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우리 일터에서 삶은 ‘쉽게’ 부서진다. 청년이 나약해서가 아니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청년들은 하나같이 스스로 삶을 일구고자 선택한 직장에서 사고를 당했다. 웹디자이너 고 장민순씨는 떠나기 직전에 유서 대신 출퇴근 교통카드 사용기록을 뽑아서 건넸다고 한다. 재작년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는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자신이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길을 선택했다. 부서진 청년의 삶이 나약한 것이 아니다. 이토록 쉽게 사람의 삶을 부수는 일터가 불합리한 것이다. 충분한 인력과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고를 방관하는 회사가 부족한 것이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장시간 노동을 바꾸지 못하고 계속 하던 대로 하는 회사가 나약한 것이다. 어쩌면 아직 바꿔 가야 할 현실보다 우리가 그동안 흘린 눈물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youngmin@youthun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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