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위원장 문현군)와 외교부가 간담회를 갖고 재외공관 행정직 노동자 처우개선 문제를 논의했다.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아시아지역 한국영사관에서 일하는 A씨는 최근 1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그런데 수당을 받지 못했다. 공무원과 달리 재외공관 행정직 노동자들은 4대 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은 영사관에서 일한다고 하면 “좋은 직장 다닌다”거나 “해외에서 근무하니 처우가 좋겠다”고 부러워한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A씨는 씁쓸하다. 영사관이라는 번쩍번쩍한 간판 뒤에 가려진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 만연한 차별이 A씨가 서 있는 재외공관 행정직 노동자의 현실이다.

“공무원은 받는 건강검진, 우리는 왜 안 되나”

A씨는 2014년부터 아시아지역 한국영사관에서 비자심사 업무를 하고 있다. 그는 5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에서 파견 온 공무원들과 달리 차별이 심하다”며 “저임금에다 4대 보험 가입이 안 돼 생활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한 A씨는 2016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지만 고용만 보장됐을 뿐 처우는 나아진 게 없다. 그는 “영사관에 파견된 공무원과 비교해 임금부터 복리후생까지 차별을 받는다”며 “똑같이 타국에서 일하는데도 주거보조비가 절반 이상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재외공관 행정직 노동자들은 재외공관장이 채용하고 업무를 지시하지만 실질적인 소속은 외교부다. 이들은 외교부나 해당 국가 재외공관 홈페이지에 난 채용공고를 보고 응시해 취업한다. 그나마 일반 행정관들은 계약직으로 뽑혀도 3개월 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추세지만 재외공관당 한 명씩 있는 요리사는 1년에 한 번씩 근로계약서를 쓴다.

유럽지역 한국대사관에서 일하는 B씨는 15년차 베테랑 요리사다. B씨는 하루 8시간, 주 6일 일하고 기본급 1천820달러에 경력수당 400달러를 받는다. 각종 연회 초과노동은 기본이다. B씨는 “경력수당이 최대 400달러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함께 일하는 공무원들은 호봉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데 우리는 아무리 경력을 쌓아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재외공관 행정직 노동자 월평균 기본급은 1천850달러다. 공무원이 받는 재외근무수당은 없다. 초임 부영사는 주거보조비로 2천300달러를 받는다. 반면 행정직 노동자들은 절반도 안 되는 1천달러에 만족해야 한다. B씨는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대부분 큰 도시에 위치해 있다 보니 집값이 비싸다”며 “주거보조비로는 영사관 인근에 집을 구할 수 없어 도심 외곽에서 출퇴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재외공관 행정직 노동자들은 1년에 한 번 하는 건강검진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공무원들은 근무지역에 따라 해당 국가나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는다. A씨는 “한국보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에서 일하는 재외공관 공무원들은 1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가 건강검진을 받는다”며 “영수증을 제출하면 병원비 일부를 지원받기는 하지만 건강검진비를 받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은 미리 병을 예방할 수 있는데, 우리는 병에 걸리고 나서야 지원을 받는 꼴”이라고 성토했다.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으니 노후준비는 언감생심이다. A씨는 “외교부 소속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행정직 노동자들에게 사회보장제도만큼은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평생직장으로 자긍심과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문재인 정부가 나서 공무원과 행정직 간 차별을 최소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조 “4대 보험 적용하고 보완점 찾아야”

세계 183개국 재외공관에서 일하는 행정직 노동자들이 지난달 초 한국노총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위원장 문현군)에 가입했다. 이날 현재까지 300여명이 조합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노조는 최근 외교부와 간담회를 갖고 재외공관 행정직 노동자 처우개선 문제를 논의했다. 노조는 “재외공관 관리책임과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외교부가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한국과 가까운 나라에서 일하는 행정직 노동자의 실무교섭 참여를 위한 유급시간 보장도 요구했다.

외교부는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외교부는 간담회에서 “재외공관 행정직 노동자들의 애로사항을 알고 있다”며 “행정직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 보자”는 입장을 밝혔다. 노조는 이달 안에 1차 실무교섭을 목표로 요구안을 마련 중이다.

문현군 위원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무원과 공무직 간 임금테이블은 달라도 복리후생만큼은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재외공관 행정직 노동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모든 차별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교부는 4대 보험 가입과 관련해 예산과 국적 문제를 제기한다”며 “일단 한국 국적 행정직 노동자들에게 4대 보험을 적용한 뒤 재외공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등 여러 제반 상황을 고려해 보완책을 마련하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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