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휴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대상판결 : 대법원 2018.2.28. 선고 2017도13103 판결



1. 사실관계

20대 국회의원선거를 두 달 앞둔 2016년 2월 청년유니온 위원장인 김민수는 국회 담장 앞에서 채용비리에 연루된 최경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의 공천을 반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40분간 서 있었다.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1인 시위 모습이다. 1인 시위가 별 효과는 없었는지 최경환 의원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고 경산시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런데 몇 달 후 1인 시위를 했던 김민수는 기소됐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검찰은 김민수의 행동이 두 가지 점에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기소했다. 첫째는 선거운동기간 이전에 ‘선거운동’을 했다는 것이고(공직선거법 254조), 둘째는 선거일 전 180일 이내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광고물을 ‘게시’했다는 것이다(공직선거법 256조3항1호 아목, 90조1항1호).

한국 사회의 공직선거법은 주체·시기·방법적 측면에 걸쳐 상세한 규제를 두고 있다. 때문에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정치참여마저 과도하게 규제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게다가 법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와 정치참여가 지닌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선거법 조항을 기계적으로 해석·적용해 유권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해 왔다. 선거법 사건에서는 법원의 태도가 어쩌면 법률조항 그 자체보다도 넘어서기 어려운 큰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피고인의 변호인들은 동료시민의 합리적 상식과 법 감정을 믿어 보기로 했다.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것이다.

2. 원심의 무죄판결

1심에서는 피고인의 공소사실 두 가지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배심원 다수와 재판부의 일치된 결론이었다.

(1)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의 후보자 공천에 대한 단순한 지지·반대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직선거법 58조1항3호에 의해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고 (2) 공직선거법을 엄격하게 해석할 때 피켓을 일시적으로 손으로 들고 있는 것은 일정한 장소에 고정돼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게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것이 판결문에 드러난 무죄판결 이유였지만, 그 저변에 깔려 있는 판단은 피고인의 공천반대 1인 시위가 선거의 공정을 해하거나 유권자의 의사를 왜곡할 위험성이 있는 불법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정도 의사표현마저 금지해야 할 만큼 우리의 선거문화나 시민의식이 미숙하지 않다는 시민들 스스로의 판단 말이다.

검찰의 항소로 진행된 2심 재판에서도 피고인의 행위는 ‘후보자 공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반대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이기 때문에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90조1항 위반 부분은 무죄의 이유를 약간 달리했는데, 불특정 다수가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으로 게시물을 현출하는 것을 규제하고자 하는 것이 90조1항 취지이기 때문에 손으로 피켓을 들고 있는 것도 90조1항의 광고물 ‘게시’에는 해당한다고 봤다. 다만 256조3항1호가 “선거운동과 관련해” 이뤄진 90조1항 위반행위를 처벌하는 점을 고려할 때 피고인의 행위는 선거운동과 관련해 이뤄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역시 처벌할 수 없다고 무죄의 결론을 유지했다.

3.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그런데 대법원은 올해 2월28일 공직선거법 90조1항 위반과 관련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할 수 없다며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먼저 법리적으로 공직선거법 256조3항1호의 ‘선거운동과 관련하여’는 ‘선거운동에 즈음하여, 선거에 관한 사항을 동기로 하여’라는 의미로 광범위한 개념이라고 확장해 해석했다. 광고물 게시 자체가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선거운동에 즈음하거나 선거에 관한 사항을 동기로 했다면 90조1항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경환 의원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사였던 점, 피고인이 1인 시위 후 최경환이 공천될 경우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언급한 점, 이후 청년유니온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최경환에 대한 낙선운동을 벌인 점 등에 비추어 피고인의 1인 시위는 “선거운동에 관한 사항을 동기로 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므로, 비록 피고인의 1인 시위가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90조1항 위반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파기의 주된 취지였다.

4.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

오늘날 민주주의가 실질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국민이 선거과정에서 정치적 의견을 자유로이 발표·교환함으로써 국민 의사에 부합하는 대표자를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과정에서 정치적 표현을 할 자유는 민주주의 달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표현 및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자유를 원칙으로, 금지를 예외로’ 해야 한다.

그런데 공직선거법은 58조2항에서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 주체·시기·방법에 관해 규제조항들을 촘촘히 두고 있다. 그나마 후보자와 예비후보자에게는 일정한 범위 내의 선거운동을 허용하면서 그 외의 선거운동방법을 금지하지만,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공직선거법상 허용된 선거운동 내지 정치적 의사표시 영역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각종 금지조항은 유권자들에게 선거일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와 관련한 의사표현이나 정치활동을 봉쇄하는 것과 같은 효과로 나타난다.

이러한 선거법의 문제점을 고려할 때 법원으로서는 유권자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도록 그 조항들을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공직선거법 93조1항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를 실질적으로 “선거운동”에 준할 정도의 엄격한 의미로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밝힌 것도 같은 취지라고 볼 수 있다(헌법재판소 2011.12.29. 2007헌마1001 등, 판례집 23-2하, 739·765 참조).

그러나 법원은 오랫동안 이런 엄격한 해석원칙과는 거리가 먼 해석론으로 유권자들의 낙천·낙선 의견개진, 시민단체의 일상적인 정책운동까지도 ‘선거운동’이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것으로 폭넓게 해석하고 처벌했다. 다만 201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5도11812 판결)에서는 그동안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광범위하게 선거운동으로 규제해 온 기존 판결들이 대의민주주의에서 당연히 허용돼야 할 국민의 정치활동을 위축시키는 문제점이 있음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이렇게 스스로 지적했던 문제점을 개선하기는커녕 ‘선거운동과 관련하여’를 ‘선거운동에 즈음하여, 선거운동에 관한 사항을 동기로 하여’라고까지 확장해석해 표현의 자유 침해범위를 더욱 확장시켰다. 어떤 의사표현이 그 자체로는 선거운동이 아님에도 시기적으로 선거운동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규제범위에 포함돼야 할 정당성도 없고, ‘즈음’이라는 표현은 그 규율범위를 구분하기에 너무도 추상적인 표현이다. ‘선거운동에 관한 사항을 동기로 하여’는 거의 새로운 구성요건의 창설에 가깝다. 이는 죄형법정주의 원칙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률해석이다. 시민들과 하급심의 전향적 법률해석을 후퇴시키는 퇴행적 판결이기도 하다.

공천에 관한 의사표현을 보장하고자 한 공직선거법 58조1항3호 도입취지에도 반한다. 58조1항3호는 낙천운동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던 2000년 공천에 대한 시민들의 정당한 의사표현을 보장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수용된 결과다.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보장하기 위해 ‘선거운동’ 개념에서 배제하고 있는 것인데 그 행위가 선거운동에 즈음해, 선거운동에 관한 사항을 동기로 해서 이뤄진 것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처벌한다면, 공천반대 의사표시를 선거운동 범위에서 배제시킨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거법이나 해당조항의 체계를 살펴봐도 대법원의 해석론에 의문이 생긴다. 피고인에게 적용된 것은 256조3항1호 아목인데, 1호에서는 ‘선거운동’과 관련해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 처벌한다고 하면서 공직선거법 7장(선거운동) 규정들을 위반한 행위 16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또 2호에서는 ‘선거질서’와 관련해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 처벌한다고 하면서 5장(선거인명부)과 10장(투표), 11장(개표) 규정들을 위반한 행위 8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3호는 투표참여 권유활동 관련 위반행위를, 4호는 선거범죄 신고자 보호규정 위반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이다. 즉 해당조항의 ‘선거운동과 관련하여’는 각종 제한규정 위반죄를 규정하면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위반행위 범주를 ‘선거운동’ ‘선거질서’ ‘투표참여 권유활동’ ‘선거범죄 신고자 보호’의 유형별로 나누기 위한 표현이라고 봐야지, 선거운동이 아님에도 시기적 근접성이나 선거운동과 연결된 동기가 있다고 해서 처벌하려는 표현은 아닌 것이다. 그 외에도 대법원 판결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나 ‘광고물’ ‘게시’ 등 이 조항의 구성요건 해석에 있어서 규제 취지와 기본권의 중요성을 고려해 적용할 수 있는 엄격한 해석론 그 어느 것도 시도하지 않았다.

5. 결어

다가오는 6월에는 전국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곧 후보자 공천과정도 본격화될 것이다. 분명 공직선거법은 정당의 후보자 공천에 대한 단순한 의견개진과 의사표시는 공직선거법상 규제대상인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유권자는 다시 한 번 위축을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됐다. 후보자 공천에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혼자서 피켓 하나를 들고 싶어도 기소와 처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선거운동은 아니지만 선거운동과 ‘관련’된 것으로 엮일지 모르니까 말이다.

권력자들이 부패하고 헌정을 농단할 때 시민들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그런 성숙한 시민의식이 충만한 사회다. 그럼에도 여전히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주권자가 자신의 일꾼을 뽑는 과정에서 후보자 지지나 반대의 의사표시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불합리한 판결이 더욱 서글퍼진다. 파기환송심에서 부디 대법원의 퇴행적 판결이 바로잡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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