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지난달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되돌아보면 참 우습다. ‘주 68시간이냐 주 52시간이냐’ 하는 논쟁은 고용노동부가 행정해석으로 주 68시간쪽에 손을 들어주면서 시작됐다. 이 해괴한 논리는 ‘1주일은 5일’이라는 비상식적 해석에서 출발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1주일은 7일이라고 생각한다. 법은 국민의 상식적인 법감정을 뛰어넘어선 안 된다. 이번 국회 본회의 의결은 상식에 반하는 행정해석으로 수십년째 근로기준법을 형해화시켰던 노동부 잘못을 뒤늦게나마 바로잡은 것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몇 년씩 단계적 도입으로 중소 영세기업과 대기업 노동자 사이를 분리했다.

잘못된 행정해석 때문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들을 생각한다면 법을 집행하는 노동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동안 68시간 장시간 노동에서도 제외돼 무한정 노동이 가능했던 노동자는 26개 특례업종 820만명에 달했고, 여기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550만명까지 합치면 전체 노동자의 3분의 2가 장시간 노동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특례’ ‘예외’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노동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 특수한 사례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면 거기엔 ‘특수’란 말을 붙이면 안 된다. 세상에 이런 법 집행이 어디에 있나?

그동안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업종으로 묶였다가 이번에 빠진 21개 업종들을 살펴보면 황당하다. 발전소처럼 공적 업무를 담당하면서 24시간 감시하지 않으면 국민 안전에 위해를 주는 곳이라면 국민들도 이해할 것이다. 민간이라도 정유공장이나 제철소처럼 거대한 장치산업이라면 또 모를까, 분뇨처리·사회복지·창고보관·자동차·도소매·교육서비스·여론조사·이미용 같은 산업을 왜 근로시간 무제한 업종으로 묶어 놨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기업의 이윤창출을 위해 이것저것 갖다 붙이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번 법 개정으로 그동안 엉터리 법 집행이 겨우 제자리를 잡았다. 낡은 관행을 일부 고쳤을 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이번 법 개정으로도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과 5개 특례업종 노동자는 여전히 무제한 노동을 감당해야 한다. 이들은 여전히 500만명이 넘는다.

이 와중에 조선일보는 3월2일자 10면에 <중소 제조업체 근로자들 “연봉 600만원 이상 깎인다” 걱정>이라고 딴죽을 건다. 중소업체 노동자들이 수당이 많은 연장·휴일근무를 선호해 왔는데 이번 법 개정으로 임금이 큰 폭으로 줄어 걱정이란다. 언제부터 조선일보가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 형편을 살폈다고 이런 논리를 펴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 언론은 사람의 노동을 돈과 목숨 사이의 시소게임으로 보는 이런 낡은 이분법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떤 노동자도 죽으면서까지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 장시간 연장노동에 기대어 생활임금을 해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임금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노동부의 해괴한 논리는 산업재해 승인기준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동안 노동부는 발병 전 석 달 동안 근로시간이 주 60시간을 넘어야만 산재로 인정해 왔다. 법을 위반한 초과근로를 해야만 산재를 인정해 주는 이상한 법 집행에 수많은 산재 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