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상철 공인노무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부가 지난달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산업재해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로 28년 만에 이뤄지는 전부개정이다. 보호대상을 ‘근로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확장하고 사업주 책임을 강화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일각에서 전부개정안 내용이 미흡하다고 아쉬워하는 이유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들이 보완할 대목을 보내왔다.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근로기준법은 2조에 “근로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32조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안전보건법 5조에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한다”는 사업주 의무가 명시됐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 중 노동자의 정신건강 보호·예방에 관해 구체적으로 명시한 내용은 없다. 같은 법 45조에서 감염병·정신병 또는 근로로 인해 병세가 크게 악화할 우려가 있는 질병에 걸린 자에 한해 의사 진단에 따라 근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내용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2014년 압구정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자살사건, 지난해 LG유플러스 고객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 올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자살사건에 이르기까지 업무에 관련된 자살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업무상 스트레스에 의한 우울장애·불안장애·적응장애·외상후 스트레스장애·급성 스트레스 반응·수면장애 같은 직업성 정신질환이 증가하고 있다.

노무사 일을 하면서 자살과 관련한 산업재해 사건을 여러 차례 진행한 경험이 있다. 지하철 기관사는 업무상 부담이 가중되면서 전직을 요청했지만 회사가 이를 묵살했다. 자동차회사 책임연구원은 연구개발 지연 책임을 혼자서 짊어졌다. 야간에 지하철에서 청소를 하던 노동자는 동료의 괴롭힘으로 힘겹다며 전근을 요청했으나 사업주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모두 업무상재해로 인정된 사건들이다.

노동자가 업무수행 중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사용자는 적극적인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고,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가중돼 자살에 이르렀다고 인정된 것이다. 이런 참담한 사건이 지속되지만 사업주에게 노동자 정신건강을 보호하고 예방할 법적의무는 부과돼 있지 않다.

뇌심혈관계질환이나 과로사 사건 역시 조직문화·직무스트레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할 때 “보건조치 규정에 ‘업무수행이나 이와 관련한 인적·물적 환경에 따른 신체적 피로 및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할 필요가 있다”거나 “일터 괴롭힘을 포함한 정신건강을 저해하는 노동환경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제기했으나 전부개정안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다만 고객을 직접 대면하거나 전화응대를 하는 고객응대 노동자에 대해 사업주에게 건강장해 예방조치, 업무의 일시적 중단·전환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화했을 뿐이다. 고객응대뿐 아니라 일터 괴롭힘을 포함한 정신건강을 저해하는 노동환경에서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직장내 성희롱·성폭행, 감정노동, 일터 괴롭힘은 본질적으로 권력관계에서 비롯된다. 노동자에게 조직질서 유지라는 명분으로 무조건적인 순응을 요구한다. 고객이든 상사든 동료든 사업장에서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 억압을 받는 자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노동관계법령에는 정신노동과 관련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선언적 규정만 있을 뿐 노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세부적인 내용이 규정되지 않다. 현실적으로 인사상 불이익과 업무상재해 등 실질적인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보호장치가 없다.

정부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을 통해 모든 국민은 정신질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표명하고 있다. 국민 정신건강을 보호하겠다고 하면서 노동관계법령에 일하는 사람의 정신건강 보호와 예방에 관한 실질적인 내용을 두지 않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외형과 내실에 차이가 상당하다. 모든 국민은 육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건강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보완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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