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 3자 혹은 노사-노정 2자가 서로 이해가 얽힌 문제와 관련해 정보를 공유하고(1단계), 의견을 교환하며(협의·2단계), 쟁점을 교섭하는(3단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대화는 '사회적 교섭'이나 '사회적 합의'와 같은 게 아니다. 공유되는 정보와 교환되는 의견의 수준이 허접할 때 제대로 된 교섭이나 협상은 이뤄질 수 없다. 알찬 정보와 튼실한 협의가 없다면 효과적인 교섭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대화는 불가능하다.

사회적 대화라면 경기를 일으키며 반대하는 집단과 이와는 정반대로 사회적 대화는 반드시 사회적 대타협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는 집단이 갖는 공통점이 있다. 정보와 협의 단계를 무시하고 '합의'의 시각으로만 사회적 대화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합의주의' 틀에 갇힌 시각에서 사회적 대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공유되는 정보의 양과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하고, 의제에 대해 내실 있고 충실한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런 토대가 갖춰진 다음에야 제대로 된 교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정보와 협의 단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주고받기(give and take) 식 거래주의 관점에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교섭이나 사회적 대타협, 그리고 사회적 합의주의는 과학적인 운동 용어가 아니다.

사회적 대화, 그중에서도 정보와 협의의 중요성은 금호타이어와 한국지엠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현재 진행형인 두 사례 모두에서 사용자와 정부가 독점한 정보는 노동조합에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다. 사용자와 정부가 통제하는 정보는 문제의 핵심을 드러내기보다 진실을 은폐하고 호도하는 '선전선동' 재료로 언론에 활용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왜곡시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태 해결을 위한 협의가 신의성실하게(in good faith) 이뤄지기는커녕 구차한 변명과 일방적 통보의 채널로 전락해 노사정 3자 간의 불신과 갈등만 고조시키고 있다.

금호타이어와 한국지엠 사태가 해를 넘겨 진행되고 있음에도 의미 있는 사회적 대화 움직임이 없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군다나 노동존중 사회와 사회적 대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지 1년도 안된 시점임을 고려할 때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금호타이어와 한국지엠 사용자의 목소리만 크게 들리고, 채권단을 이끄는 산업은행과 정부 논리만 횡행할 뿐이다.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데는, 노동운동의 역량 미비와 경험 부족도 한몫하고 있다.

정리해고를 동반하는 구조조정과 공장폐쇄는 기업 수준의 노동조합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금호타이어와 한국지엠이 속한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 등 정부 관련부처와 산업은행이 금속노조와 민주노총과 회합을 갖고 정보를 공유하고 협의를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일자리 정책을 주도하는 일자리위원회나 사회적 대화를 책임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없다. 금호타이어가 소재한 광주광역시, 한국지엠이 소재한 전라북도(군산시)와 인천광역시의 지자체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지도 않다. 해당 공장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만 애가 탈 뿐이다. 사회적 조정(social coordination)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한 공장의 운명을 넘어 지역사회와 국민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끼치는 사태가 전개되고 있는데도, 이로 인해 야기될 부정적 효과를 억제하고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노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회적 대화를 공약하고 집권한 정권에서 정말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사태에 대해서는 사회적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 역시 제대로 된 돌파구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 문제는 노동조합 혼자만의 투쟁으로 돌파할 수 없는 사안이다. 지역과 산업 수준에서 사회적 대화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국민경제 관점에서 산업정책과 노동정책을 통해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국가와 자본에 요구해야 한다. 두 사태 모두 다국적기업(초국적자본)의 글로벌 공급사슬(global supply chain) 문제와 직결돼 있기에 해당 기업과 지역을 넘어 국가 차원의 해법을 마련하는 사회적 대화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1998년 현대자동차와 만도기계 정리해고,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2010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의 공통점이 있다. 노사관계·노사정관계·노동정책·산업정책·사회정책 측면에서 어떠한 교훈을 얻거나 긍정적 유산을 남기지 못한 채, 불신과 허무의 황량한 폐허만 남았을 뿐이라는 점이다.

엄청난 비용과 희생을 치르고서도 지역사회와 국민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공장 사업장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사회적 대화 경험(문제 해결 메커니즘)을 축적하지 못한 현실은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노동자들에게 '결사항쟁' 말고는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운동적 무기력함을 낳고 있다.

잘못과 실수를 피하는 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잘못과 실수가 일어나지 않고 책임을 질 일도 안 생긴다. 노동조합의 경우 정부와 사용자만 비난하면 된다. 반면에 문제를 풀기 위해 사회적 대화에 나선다면 잘못과 실수는 불가피하며, 그에 따른 비판과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노동운동 입장에서 사회적 대화는 조직적 의지와 전략적 선택의 문제다.

금호타이어와 한국지엠 사태를 맞아 노사정 3자는 '정보-협의-교섭' 단계를 오르내리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경험이 축적돼야 앞으로도 반복될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문제의 실천적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 이래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튼튼해진다.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에 관한 사회적 대화의 수준은 민주주의 발전 수준과 직결된 문제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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