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식량과 생필품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계급의 수익 향상을 위해 정부는 유용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생존 시간을 제한하는 법령을 발표한다. 법에 따르면 쓸모없는 사람들은 한 달을 다 사는 게 아니라 그 무용성의 정도에 따라 일수를 정해 놓고 매달 그 날짜만큼만 살게 된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에메의 단편소설 <생존시간카드>는 이런 소재로 가상의 세계를 그려 낸다.

사람들은 정부에서 시간을 배급받는다. 배급표는 거래가 가능하다. 생존 제한에 걸린 부자들은 시간보다 돈이 더 절실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배급표를 산다. 급기야 시간을 사고파는 암시장이 형성된다.

돈과 함께 시간도 소유하게 된 부자들은 마음껏 인생을 즐기지만 가난한 이들은 자신의 배급표를 팔고 받은 적은 돈으로 남은 짧은 시간을 살아간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현실에서도 시간은 ‘돈’과 매우 민감한 관계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논의를 거듭해 온 노동시간은 더욱 그러하다.

2월의 마지막 날,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으로 대한민국 노동자들에게 일주일은 더 이상 5일이 아니며, (여전히 5개 업종이 남아 있지만) 우편·방송·노선버스 등 수많은 특례업종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연장·휴일노동수당 중복할증이 기존 법원 판결인 “휴일근로수당은 통상임금의 200%를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과 배치된 것은 ‘개악’ 요소가 다분하다.

이 와중에 나는 모두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법정공휴일의 유급휴일 지정에 대한 궁금증을 감출 수가 없다. 물론 이 제도 도입에 대해서는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보낸다.

우리의 경우처럼 관공서의 휴일과 일반 노동자들의 휴일이 법으로 나뉘어 있는 사례가 다른 나라에도 많은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동안 법정공휴일은 관공서 공무원이나 공공부문 노동자, 노조가 있는 기업의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으로 적용받았지만, 나머지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내 돈 내고 쉬어야 하는 ‘사휴일’이었다.

지금까지 경제단체들이 주장한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주장은 거짓말이었음이 이번 법 개정을 통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그러함에도 자꾸 드는 궁금증은, 왜 환경노동위원회는 이 제도 도입 시기를 3년·4년 뒤인 2021년과 2022년으로 정한 것일까(2020년부터 시행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대부분 지금도 쉬고 있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모를 30~299명과 5~30인으로 나눈 근거는 무엇일까? 시행시기와 규모는 복잡한 계산과 수많은 통계를 통해 나온 것일까?

새로운 제도를 시행할 때 파급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법정공휴일이 유급휴일이 될 경우 그만큼 중소 영세사업장 부담은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법정공휴일 15일이면 한 달에 하루 정도인데 이왕이면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모든 노동자들이 동일하게 ‘빨간날’이 박혀 있는 같은 달력을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한 가지 더 덧붙여, 이렇게 노동시간단축에 발을 뗀 김에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까지 논의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근로기준법은 지난 1987년(10인 이상)과 1989년(현행 5인 이상)으로 적용범위가 확대된 이후 30년 동안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이제 그 ‘기준’을 국민 모두에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

P.S. : 소설 속 가상의 세계정부 관계자들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법령을 시행한 지 4개월 만에 생존시간카드를 폐지하는 법령을 다시 공포한다. 현실의 우리는 그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