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새 대통령이 출현했다. 2009년 취임할 때부터 부패 추문으로 말 많던 제이콥 주마가 물러나고, 시릴 라마포사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남아공 대통령은 국회에서 뽑는다. 대통령을 뽑는 국회의원은 100%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뽑힌다. 국회는 불신임 투표로 대통령을 바로 탄핵할 수 있다. 때문에 1당 당수가 대통령이 되는 시스템이 가능하다. 1994년 4월 첫 민주 선거 이후 5년마다 열린 총선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무난하게 득표율 60%를 넘기며 승승장구했다. 의석 과반을 확실히 장악한 ANC 권력은 대통령 권력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새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도 똑같은 경로를 밟았다.

1952년 소웨토에서 퇴직 경찰의 아들로 태어난 라마포사는 법대 시절 학생운동을 했다. 졸업 후 변호사 사무실에서 법조인 경력을 쌓은 후 흑인 중심 노동운동을 지향하던 남아프리카노조협의회(CUSA)에 들어가 법무부장으로 노동운동 경력을 시작했다. 82년 조직 요구에 따라 전국광산노조(NUM)를 결성한 라마포사는 85년, (흑인 민족주의 성향의 CUSA와 달리) 계급적 노동운동을 지향하던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COSATU, 코사투) 출범을 주도했다. 86년 코사투 대표단으로 잠비아 루사카에 망명해 있던 ANC 지도부를 만났다.

91년 광산노조 사무처장을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을 떠난 라마포사는 ANC 사무총장에 선출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에 나섰다. 라마포사가 복무했던 십 년 동안 광산노조는 조합원수가 6천명에서 30만명으로 급격히 늘면서 남아공 최대 노조로 성장했다. 금속노조(NUMSA)와 더불어 코사투 운동의 양대 기둥을 이뤘다.

ANC 사무총장으로 라마포사는 인종차별 독재체제인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을 위한 협상 대표로 남아공의 평화적 민주화 이행을 주도했다. 94년 남아공 역사상 첫 민주 선거에서 ANC 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돼 제헌의회 의장을 맡아 민주화된 남아공의 초석을 놓는 데 기여하면서 초대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의 후계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영국과 소련에서 교육받고 망명 지도부로 귀환해 만델라 정권에서 부통령을 맡은 타보 음베키(1942년 생)와의 당권 경쟁에서 밀리면서 97년 ANC 사무총장 자리를 내어놓고 민간 투자회사 임원으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ANC 전국집행위원 선거에 입후보해 최다 득표를 하기도 했다.

만델라에 이어 남아공 대통령에 오른 타보 음베키는 재임 기간(1999~2008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인기가 떨어졌고, 결국 2007년 12월 ANC 당권 선거에서 망명 지도부 출신인 제이콥 주마(1942년 생)에게 패배했다. ANC-남아프리카공산당과 함께 집권 3자 동맹의 한 축으로 노동운동을 대표한 코사투가 주마를 지지하면서 음베키 '타도'에 앞장섰다. 날로 확대되는 빈부격차와 치솟는 실업률 등 해결되지 않는 사회 병폐들에 발목잡힌 음베키는 ANC 당권을 잃자마자 레임덕에 빠졌고, 임기를 1여년 남겨 놓은 2008년 9월 마침내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조직노동과 평당원 지지로 음베키를 밀어내고 당권을 장악한 제이콥 주마는 2009년 총선에서 ANC가 압승하자 예상대로 남아공 대통령에 선출됐다. 하지만 주마 정권하에서도 빈부격차와 실업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주마 대통령이 부패 추문과 각종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 불만은 나날이 커져 갔다. 2014년 총선에서 ANC가 또다시 압승함으로써 주마가 대통령에 재선되기는 했으나, 야당들의 불신임 투표 시도에 시달리다가 2017년 12월 ANC 당권 선거에서 주마 지지 후보(주마의 전처)가 라마포사에게 패배함으로써 2018년 2월 대통령직마저 내놓게 됐다.

국회 인준을 거쳐 대통령 자리를 차지한 라마포사의 정치적 미래는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만든 투자 전문 지주회사 샹두카그룹은 2017년 11월 불법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라마포사는 145개에 달하는 남아공 내 맥도날드 점포 운영권을 갖고 있기도 하다. 요하네스버그에만 소유 부동산이 30건이 넘고, 케이프타운에도 아파트 2채를 갖고 있다. 경찰의 광부 학살로 문제가 된 백금 광산회사 론민의 이사직이 드러나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도 글로벌 다국적기업인 코카콜라와 유니레버의 자문역을 맡고 있다. 그의 부인은 남아공 광산 재벌가 출신이다. 포브스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라마포사의 순재산은 우리돈으로 5천억원에 달한다.

노동운동과 정치·사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발군의 실력과 업적을 보여준 라마포사는 민주화 이후 4반세기를 경과하면서도 경제적 불평등과 실업률, 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아공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 탁월한 운동가와 노련한 정치인, 성공한 자본가 모두를 경험한 라마포사는 국민을 단결시키고 사회를 안정시키면서 흔들리는 남아공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현재로선 밝은 전망보다 어두운 예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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