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영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18.1.25. 선고 2014가합57063 판결


1. 사실관계

피고들은 기아자동차 주식회사가 운영하는 화성·소하리·광주공장 사내협력업체들이다. 원고들은 각 사내협력업체에 소속된 근로자들이다.

피고들은 원고들이 소속된 금속노조와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단체협약에는 “상여금은 연 600%를 지급한다. 상여금은 결근·휴직·지급일 이전 퇴사자에 대해서는 일할 계산해 지급한다”고 규정돼 있다.

피고들은 단체협약상 위 정기상여금을 제외해 산정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시간외근무수당·야간근무수당·휴일근무수당·연차휴가수당 등을 지급해 왔다. 이에 원고들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에 따른 시간외근무수당 등 법정수당의 차액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2. 주요 쟁점

이 사건에서는 단체협약상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1주 40시간을 초과한 휴일근무에 있어 연장근무수당과 중복해 할증 지급해야 하는지 등도 쟁점이 됐으나, 가장 중요한 쟁점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점은 큰 다툼 없이 인정됐으며, 휴일·연장근로 중복할증 부분은 인정되지 않았는데 이 쟁점은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심리 중에 있다. 신의칙 위반 여부에 관해 여타의 통상임금 사건에서도 다르지 않겠지만 사용자인 피고들은 부채나 적자 발생 등 사정, 법정수당 추가 부담으로 인해 경영상 어려움이 발생한다고 호소했고 기아자동차 사내협력업체로서 사업체 규모가 영세함을 강조했다.

3. 판결 요지

대상판결은 피고들의 신의칙 항변과 관련해 다음 사항들을 중심으로 검토했다. “① 추가 재원조달 가능 여부 ② 각종 법정수당 지급 이후 기아차와 추가 도급비용 협상 가능성 ③ 악화된 경영상황의 호전 가능 여부 ④ 비노무 분야에서의 추가적인 수익 창출 가능 여부 ⑤ 각종 법정수당 지급으로 인해 피고들의 경영상 어려움이 발생했는지 여부, 즉 신의칙을 이유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대한 책임을 근로자들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 ⑥ 각종 법정수당에 있어서 분할지급 가능성이 존재하는지 여부 ⑦ 표준재무제표상 당기순손실·유동비율·부채, 일시적인 수익성 하락 여부 ⑧ 원고들을 포함한 피고들 소속 근로자수 및 피고들이 지급해야 할 추정 소급지급액 등”이다.

예를 들어 56개 피고 사내협력업체들 중 한 업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① 피고 주식회사는 노무비용이 제조비용의 90%에 이르는 노무도급 중심의 업체인 점 ② 표준재무제표상 2011년에는 당기순이익이 발생했고, 2013년도에 비해 2014년도에 경영성과가 개선돼 당기순손실이 감소했으며, 2015년 이후 표준재무제표를 제출하고 있지 않은 점 ③ 부채 부담이 반드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없는 점 ④ 노무도급 중심 업체로서 금융권을 통한 추가 재원조달 확보가 불가능하지 않은 점 ⑤ 이 사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소속 근로자들에게 각종 법정수당을 지급한 후 이를 전제로 추후 기아차와 추가 도급비용 협상이 가능한 점 ⑥ 근로기준법을 준수해 산정한 통상임금을 기초로 각종 법정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원칙인 점 ⑦ 2014년도 유동비율은 약 120%, 2015년도 유동비율은 약 69%이나 소속 근로자들이 56명에 불과한 점 ⑧ 피고 주식회사가 추가 법정수당의 일시 지급으로 인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면, 추후 소속 근로자들과 분할지급 등 체불 법정수당 지급 방법에 관한 협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점 ⑨ 피고 주식회사가 주장하는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은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추가 법정수당의 지급에 기인한 것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책임을 소속 근로자들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의 추가적인 법정수당 청구가 피고 주식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려운바, 피고 주식회사의 신의칙 위반 주장은 이유 없다.”

한편 변론종결 전에 ‘이미’ 폐업한 업체들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신의칙 항변 자체가 허용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추가 법정수당 청구에 있어 신의칙 항변은 기업의 존립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러 ‘그로 인한 피해가 종국적으로 근로자측에까지 미치게 될 수 있음을 고려’해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춰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한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인정되는 것이므로, 원고들의 위 피고들에 대한 추가적인 법정수당 청구로 인해 이미 폐업한 위 피고들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으므로 결국 위 피고들의 신의칙 위반 주장은 이유 없다”는 취지다.

4. 평가

대법원 판결(2013.12.18. 선고 2012다89399), 이른바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사용자들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한결같이 ‘신의칙 위반’이라 주장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등 강행규정상의 권리는 신의칙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 ‘법리상 일반원칙’인데,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함으로써 현장에 혼란만 가중시킨 것이다. 즉 대법원의 신의칙 법리가 현장에 ‘예측가능성’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가 돼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인지 등 법리가 추상적이어서 결국 개별 사건에서 일일이 다툴 수밖에 없고, 그리하여 회사 사정이 어렵다거나 법정수당을 지급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따위의 형사 재판 양형 참고자료로나 쓰일 탄원서가 민사 재판에 제출되고 있다. 법정수당 청구에 대해 신의칙 항변을 허용한 법리는 재고를 요하며, 적용하더라도 매우 엄격하게 허용돼야 한다.

먼저 이 사건에서 모든 피고들은 변론종결 전부터 이미 적자나 부채가 발생해 여기에 법정수당 추가 부담까지 지게 되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피고 주식회사가 주장하는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은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추가 법정수당의 지급에 기인한 것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책임을 소속 근로자들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시했는데, 이는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경영상 어려움은 주요하게 고려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리고 법원은 악화된 경영상황 호전 가능성은 물론, 금융권을 통한 재원조달 가능성, 근로자들과의 협의를 통한 분할지급 가능성 등도 검토했다. 이는 기업이 경기 호조에 따라 겪는 일시적 어려움을 이유로 근로자만 희생시키는 것은 부당하고, 경영상 사용되는 일반적인 수단과 근로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법정수당 부담을 완화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타당하다. 즉 신의칙 항변에 ‘보충성’을 요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특기할 점은 원청인 기아자동차와 추가 도급비용 협상 가능성을 검토한 것이다. 대부분 피고 업체가 도급을 위장한 영세 불법파견업체로서 대외적으로 독립된 업체라기보다는 기아자동차의 업무 부서와 비슷하기 때문에, 기아자동차로부터 법정수당을 추후 일부라도 지급받을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상판결은 법정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대법원의 신의칙 법리를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보호 정신에 맞게 엄격하게 적용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사용자는 신의칙을 우선해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부정해야 할 ‘극히 예외적인 사정’, 법정수당 부담 자체만으로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되고 그 위험을 분산할 다른 방법이 전혀 없다는 점을 명백하게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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