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여객터미널 탑승장 대한항공 비행기 안에서 청소노동자들이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의원들에게 현장실태를 설명했다. <윤자은 기자>

“회사에서 주는 화학약품을 쓰면 너무 잘 닦여서 좋은 청소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손으로 만지면 피부 살갗이 벗겨지더라고요. 우리가 쓰는 물질이 몸에 유해한지 무해한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6일 새벽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위원장 이학영) 소속 국회의원 8명이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방문했다. 대한항공 자회사 한국공항㈜ 원·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실태와 증언을 듣고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2월 원청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을 하다 일터에서 숨을 거뒀다. 대한항공 기내를 청소하는 하청노동자들이 기화소독제를 흡입하고 집단 실신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등 항공사, 1등 지상조업업체의 민낯

이른 새벽 간담회 장소는 증언하려는 노동자들로 가득 찼다. 현장 증언대회에는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민주한국공항지부와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이 참석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이학영 을지로위원장, 김병관·남인순·박광온·송옥주·신동근·최인호 의원이 노동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1등 항공사인 대한항공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일터와 휴게실, 작업환경뿐만 아니라 건강과 생명까지 고려하지 않았다”며 “청소노동자들이 실신한 사고가 반복되는데도 아직까지 개선하지 않은 것을 보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대한항공·한국공항 사측과 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 관계자들도 간담회에 함께했다.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은 사측 관계자들을 퇴장시킨 다음 이뤄졌다. 곧바로 원·하청업체의 산재 은폐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노동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다치는 일이 빈번한데도 사측이 산재 처리는커녕 치료를 마치기도 전에 출근을 종용한다는 것이다. 큰 사고로 산재처리를 한 A씨에게 관리자들이 “너 때문에 회사 손해가 막심하다”고 장기간 압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리자는 직원들에게는 “A씨 때문에 안전장려금을 지급하지 못한다”고 이간질했다. A씨는 “산재처리를 했다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미움을 사 한동안 뒤통수가 따가웠다”며 “개가 다쳐도 치료해 주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다.

최근 5년간 한국공항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건수는 25건에 그쳤다. 사무직군을 포함한 전체 산업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무수한 산재가 발생하고 있지만 산재를 신청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는 얘기다.

노동부, 임시건강진단 명령 약속

산재 은폐 문제와 유해물질 측정에 대한 질의가 쏟아지자 정형우 중부지방고용노동청장은 “현재 고발장이 접수된 상태이며 조사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2년 전에도 진행 중이고 오늘도 진행 중이라는데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는 항의가 잇따랐다. 조성애 노조 정책기획국장은 지방고용노동청장이 내릴 권한이 있는 임시건강진단을 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 청장은 “임시건강진단 명령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한국공항의 조업 항공편수는 2013년 대비 15.9%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인력은 되레 2.6% 줄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증가했다. 노조는 “노동비용을 짜내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공항 소속과 외주회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서너 시간 쪽잠 자고 출근하는 생활 그만하게 해 달라”

현장 증언대회 이후 제2여객터미널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탑승구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을 찾았다. 노동자들과 의원들이 기내에 올라 노동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활주로에 선 조합원은 “대기·휴게공간이 없어 휑한 구석에서 비닐을 뒤집어쓰고 대기한다”고 설명했다.

같은날 한국노총 연합노련 한국공항노조 조합원들과의 간담회도 열렸다. 노조는 하루 15~16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 문제를 제기했다. 백사기 노조위원장은 “장시간 노동은 인력부족 때문에 발생하는데 노조가 사측에 지속적으로 인력문제를 제기했음에도 충원되지 않고 있다”며 “제2터미널을 설계할 때 공사에서 상주 노동자들을 위한 고려를 하지 않아 휴게실·화장실 등 작업환경이 열악하다”고 호소했다. 다른 노조 관계자는 “법이 미비하다 보니 노사 간 싸움이 벌어진다”며 “퇴근 후 서너 시간 쪽잠을 자고 바로 출근하는 생활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간담회에 이어 을지로위와 사측 간 비공개 간담회가 열렸다. 을지로위 관계자는 “원청과 하청에서 주기적으로 을지로위에 개선상황을 보고하기로 했다”며 “노동부·국토부와 협의해 빠른 시일 안에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은 간담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오는 대한항공·한국공항 경영진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경영진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간항공사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질까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이 민간항공사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김진영 노조 샤프에비에이션케이지부장은 “국내 1위 지상조업업체도 이런 수준인데 군소업체들의 노동조건은 얼마나 열악하겠느냐”며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민간항공사 지상조업업체들에 대한 전반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학영 위원장은 “노동자들이 과로와 스트레스로 사망하고 있는데도 민간항공사 근무조건 개선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오늘을 시작으로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공공운수노조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대한항공 기내청소노동자 김아무개(57)씨는 지난 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현장 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공사를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사진 참조>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는 240여명인데, 변기가 딱 한 개만 설치돼 인권유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6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와 대한항공-한국공항 원·하청 노동자 현장 증언대회에 참석한 김씨는 “휴지걸이도 없이 변기만 덩그러니 설치해 놨다”며 “의원님들이 방문한다고 하니까 급조해서 하나를 더 설치한 것”이라고 혀를 찼다. 그는 “휴게공간이 없어 수면실에서 자는 사람 발 밑에서 후다닥 식사를 때운다”며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또 다른 노동자는 “오늘 의원님들 이동하는 동선에 맞춰 사측에서 밤새 바닥 왁싱작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원·하청 노동자들은 “원·하청 사측은 외부 관심이 높아질 때만 보여 주기 식 반짝 쇼를 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와 피부에 와 닿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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