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욱 변호사(법무법인 송경)

2018년 입춘(4일)이지만 서울의 온도는 여전히 섭씨 영하 10도에 묻혀 있다. 한결같이 참 춥다. 그리고 지금부터 852일 전인 2015년 10월7일 진정성 있는 사과와 피해자 배제 없는 보상, 투명하고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대책이라는 세 가지 요구사항으로 시작된 반올림의 삼성전자 앞 노숙농성은 벌써 세 번째 겨울을 나는 중이다.

2016년 겨울 뜨거웠던 촛불은 결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법의 심판대에 세웠지만, 1심 형량은 촛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삼성직업병 피해자들과 반올림 활동가들, 민변 노동위원회를 비롯해 삼성직업병 문제에 관심을 가진 많은 시민들이 2015년 10월7일부터 2018년 2월4일 오늘까지 농성장을 지켰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휴일도 가리지 않으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지켜 왔지만 반올림 노숙농성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좋게 말해 노숙농성이지만, 반올림 노숙농성은 산업현장에서 이름도 모르는 유해물질에 노출돼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한 생명을 위한 '싸움'이고 '투쟁'이다. 그래서 한강을 꽁꽁 얼려 버릴 정도로 유난히 추웠고, 눈도 많았던 이번 겨울에도 꿋꿋이 강남역 한복판 투쟁의 최전선에 머물러 있는 것이리라.

어찌 보면 휘황찬란한 강남역 삼성전자 고층빌딩 아래 매우 초라해 보일 수 있겠고, 용역을 동원하면 금방 철거해 버릴 수도 있는 조그마한 비닐천막 안 농성장이다. 그럼에도 반올림이 무려 852일이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피해자들과 활동가들, 함께하는 시민들이 한겨울 추위도 날려 버릴 만큼 뜨거운 가슴과 따뜻한 마음으로 한목소리를 내며 삼성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은 반올림이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반올림이 외치는 노동자의 건강권과 생명권은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이 되려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던가. 회사를 위해 죽어라 일하는 자신의 노동자들도 챙기지 못하는 기업이 무슨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고, 일류기업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삼성은 이제라도 싸움과 투쟁을 끝내기 위해 반올림 앞에 나와 대답해야만 한다. 삼성이 국정을 농단한 것에 책임을 지고 반성하려면, 삼성을 위해 일했던, 그리고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부터 돌아보고 챙기기를 바란다.

반올림이 요구하는 사항들이 삼성에게 매우 쉬운 일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이 글이 올라올 월요일(5일) 오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항소심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서울구치소도 춥겠지만 농성장은 더 춥다. 아직까지 반올림 농성을 해결하지 못한 삼성이라면, 이 부회장에게 1심보다 엄중한 선고가 내려져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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