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방향을 놓고 정부와 여당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휴일근무 수당 중복할증 여부를 놓고 여당 내에서 이견이 불거지더니 경제부처 장관들은 재계가 요구하는 특별연장근로와 탄력적 근로시간 확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산자부 장관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특별연장근로 허용”


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일 여야 간사들이 만나 향후 고용노동소위(법안심사소위) 일정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환경부 소관법안을 놓고 여야가 이견을 보인 끝에 고용노동소위 일정도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 소관법안 탓에 고용노동소위 일정을 잡지 못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면에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이견이 자리 잡고 있다.

여당은 최대한 빨리 심사를 해서 2월 임시국회에서 결론을 내길 바란다. 반면 야당은 지난해 11월 여야 간사단합의가 여당 내부 이견으로 폐기된 것에 관해 앙금이 남아 있다. 더불어민주당 당론이 정해지기 전에 소위를 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부처 장관들이 엉뚱한 주장을 들고나오기 시작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반도체업계 행사에 참석해 “산업 경쟁력을 고려해 업종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고민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와 이러한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해 논란이 증폭됐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계절이나 경기특수성을 반영해 특정한 기간에 법정 근로시간을 웃도는 장시간 근로를 허용하는 제도다. 근기법에 따르면 취업규칙으로는 2주 이내 기간 동안 평균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다면 특정한 주에 4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특정한 날에 8시간을 넘겨 일해도 된다. 노사가 서면합의를 하면 3개월 이내 기간 동안 특정한 주에 52시간, 특정한 날에 12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재계는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기간 확대를 꾸준히 요구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취업규칙으로는 1개월, 노사 서면합의로는 6개월까지 확대하는 법안을 냈다. 노동계는 “장시간 노동을 유발한다”고 반발했다.

노동시간단축 여야 간사단합의가 나왔던 지난해 11월에는 주 52시간 정착시점에 재논의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사실상 탄력근로 시간제 확대를 없던 일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백운규 산자부 장관이 갑자기 재계 요구를 수용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백 장관 발언이 논란이 되자 산자부는 이달 1일 해명자료를 내고 “근로시간단축을 산업현장에 원활히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탄력적 근로시간제)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라며 “현행법에서 활용가능한 제도를 실무급에서 노동부에 문의했다”고 설명했다.

백 장관뿐만이 아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30인 미만 사업장은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 엇박자에 경제논리 힘 실리나

백운규 장관이나 홍종학 장관의 주장은 환노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입장과 배치된다. 경제부처와 더불어민주당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의원들은 최근 환노위 의원들에게 탄력적 근로 단위기간 확대 의사를 타진했는데 한정애 의원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한 의원은 “법안 심사가 지연되다 보니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영표 환노위원장실 관계자는 특별연장근로 허용 주장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다만 여당 내에 “야당과 재계가 근로시간 특례업종 전면폐지를 받아들인다면 탄력적 근로시간제 조정을 검토할 수 있다”는 의견은 일부 있다.

여권 내부 혼란이 커지는 가운데 경제부처 힘과 논리에 밀려 노동시간단축 근기법 개정안이 누더기가 된 채 국회를 통과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노동부는 백운규 장관 발언과 관련해 뚜렷한 입장을 내지 못하고 있다. 김왕 근로기준정책관은 “탄력적 근로시간 확대는 산자부 장관이 말했고 해명도 했으니 산자부에 물어보라”고 말을 아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경제관료나 모피아 세력에 밀려 정권 초기에 노동개혁이 좌초한 참여정부를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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