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비트코인이 화폐라고 가정하고, 이것으로 임금을 받는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일이 발생할까.

먼저, 임금 결정이 어려워질 것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임금의 구매력을 결정하기 어려워져서다. 노동자는 임금을 결정할 때 받은 임금으로 무엇을 얼마나 살 수 있는지를 고려한다. 그리고 비트코인 임금의 구매력을 계산하려면 구매할 수 있는 상품들이 비트코인으로 가격이 매겨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비트코인으로 먼저 임금이 지급되지 않으면 비트코인 상품 가격도 책정되기 어렵다. 상품 생산비의 핵심은 언제나 인건비, 즉 임금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임금 없이 비트코인 상품 가격도 없다. 비트코인 임금은 닭과 달걀의 딜레마에 빠져 버린다.

둘째는 임금의 명목적 상승이 한계에 부딪혀서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노동자는 명목임금의 하락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트코인 임금도 일반적으로는 계속 상승할 것이다. 그런데 비트코인 발행기관은 이런 하방경직성을 감안해 코인을 발행하지 않는다. 이윤이 목적인 비트코인 발행기관에게 최악은 코인 남발로 인한 인플레이션이지, 코인 부족으로 인한 디플레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임금은 필연적인 디플레이션을 유발하며, 명목임금의 하락을 유발한다. 매년 명목임금이 하락하는 상황은 노동자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화폐 부족으로 인한 경제 전체의 상품 유통 정체도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비트코인으로 임금이 지급되면 정부의 근로소득세 징수가 어려워질 것이다. 비트코인은 금융기관 중개를 거치지 않고도 개인 간 거래를 검증할 수 있는 거래장부 암호화기술(블록체인)이 핵심이다. 사용자가 노동자의 은행 급여통장에 돈을 입금할 필요가 없다. 노동자의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으로 코인을 전송하면 끝이다. 임금은 정부에 포착되지 않는다. 정부의 근로소득세 징수율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근로소득세가 없으면 정부도 망한다.

그래서 비트코인 임금은 불가능하다. 정부도, 노동자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최근 비트코인이 화폐가 될 수 있는지를 두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큰데,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임금으로 지급될 수 없으면 화폐도 될 수 없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부분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임금 소득이 전체 소득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경제 70%에서 사용될 수 없는 화폐란 있을 수 없다.

비트코인이 미래의 화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환수단 기능만 있으면 아무것이나 화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폐공사가 원가 200원으로 5만원권을 찍어 내는 것이나, 비트코인이 200원어치 전기를 소모해서 1코인을 채굴하는 것이나 근본적 차이가 없다고 여긴다. 사람들이 그것으로 상품을 사고팔 수만 있으면 화폐다. 하지만 비트코인 주창자들의 관념과 다르게 시민 모두에게 받아들여지는 교환수단은 꽤 많은 조건들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의 실제 화폐를 살펴보자.

5만원권 지폐는 조폐공사가 아니라 한국은행이 발행한다. 조폐공사 역할은 발행이 아니라 인쇄다. 한국은행은 정부가 발행한 국채나, 국외증권을 자산으로 삼아 화폐를 부채 형태로 발행한다. 태환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행권 지폐는 정부 국채나 달러에 대한 채권증서인 셈이다. 그리고 한 단위의 채권증서 크기는 한국은행의 자산 크기에 비례한다.

한국의 시민들은 이 채권증서로 정부에 대한 채무를 갚는다. “죽음과 세금만큼 자명한 것이 없다”는 서구 속담처럼 시민들은 평생 동안 세금 채무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이 세금 채무를 청산하는 수단이 바로 한국은행이 발행한 채권증서인 한국은행권 지폐다. 한국은행권 지폐가 상품의 교환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채무청산 기능 덕분이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국은행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래서 한국은행권 지폐는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교환수단으로도 기능한다. 비트코인은 그것에 대응하는 자산이 없고, 보편적 채무청산 기능도 없다. 그래서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교환수단도 되지 못한다.

화폐의 본질은 시민의 노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세금은 정부가 시민의 노동 일부를 소유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시민공동체를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시민의 노동을 사용한다. 군대·경찰부터 행정서비스와 공공인프라까지 공무원만 200만명이고 정부가 한 해 쓰는 돈은 400조원에 이른다. 그리고 정부는 이런 노동을 사용하기 위해 시민 모두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시민은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 일부를 세금으로 지불한다. 즉 세금 지불 수단인 화폐는 시민이 공동체에 기여하는 노동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임금의 형태가 역사적으로 화폐인 이유기도 하다.

한국의 20~30대 젊은이들이 비트코인 투기에 열을 올려 나라 전체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재산증식에 기대를 접은 젊은이들이 그 데이터 더미를 모아 재산을 증식하겠다며 대학등록금과 몇 달치 ‘알바’비를 털어 넣고 있다. 하지만 앞서 봤듯 비트코인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데이터 더미에 불과하다. 그 데이터 더미가 ‘돈’으로 불리자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달려든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절대 돈이 아니다.

화폐의 본질은 노동이다. 그래서 건물주의 나라, 노동 없는 부의 세계에서는 비트코인과 같은 화폐적 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의 비트코인 투기는 노동 없는 대한민국의 필연적 결과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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