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정동길 어느 수도회 건물 1층 카페에서 노동조합총연맹의 간부가 휴지 조각에 글을 적는다. 기자들이 묻고 위원장이 답했는데, 궁금한 것도 할 말도 적지 않았다. 받아 적느라 네모난 휴지 여러 장이 어느새 빼곡하다. 받아치느라 노트북컴퓨터 타자 소리 요란한 카페에서 그 모습이 낯설었다. 익숙했던 손글씨가 유물 같다. 연인과 마주 앉아 마냥 설레었던 찻집에서 마음 담아 적어 건넨 휴지는 감동의 눈물을 닦는 데에도 쓰였을 것이라고 흐릿한 기억에 분칠한다. 버리지 못해 창고에 쌓아 둔 손편지엔 곰팡이가 피었다. 빛바랬다. 이제는 영화에서나 볼 법하다. 영등포교도소 철창 안 수인이 휴지 조각에 급히 적어 몰래 날린 '비둘기' 편지는 1987년 6월을 불렀다. 감옥엔 여전히 스마트폰이며 노트북 따위는 없을 테니 사람들은 종종 감옥에 갇힌 전 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의 손편지를 받아 본다. 적폐청산 목소리 온 데 높은 지금 꾹꾹 눌러 쓴 그 손글씨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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