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간부들을 만난다. 사회적 대화가 메뉴에 오를 터다. 분위기는 좋다. 노사정 8자 회의를 대안으로 냈던 한국노총도, 경총과 대한상의도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 의사를 밝혔다. 노사정위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돌렸던 민주노총이 ‘대화’를 언급하는 횟수를 늘렸다. 노사정 대화가 상수로 자리 잡는 듯하다. 현실화하는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는 어떤 의제를 올려야 할까.

종합적 노동개혁 청사진을 논의 출발점으로 삼자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사회적 대화를 복원하려면 이제까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유연성 위주의 노동정책을 추인하는 거수기에 불과했다는 노동계 우려를 극복할 가능성을 정부가 보여 줘야 한다. 정부가 선행조처로 할 수 있는 일은 상징적으로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는 조처를 포함한 노동존중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의지 천명이다. 내용적으로는 의제설정에서 전향적인 모습과 전략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제라도 모든 노동쟁점 사안을 아우르는 ‘정책혼합(Policy Mix)’에 주목해 개별적 논란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종합적 노동개혁의 청사진을 논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쟁점들을 각론으로 다루면서 모든 사안이 논란과 정쟁의 대상이 돼 버렸다. 비정상의 정상화 사안인 주 68시간 해체마저 격에 맞지 않는 단계적 도입 등의 논란을 초래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국정 제1과제라는 일자리 문제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의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고 진정성마저 의심받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사회적 대화의 복원은 어렵거나 하더라도 큰 효과를 낼 수 없다.

최저임금 연착륙과 지속 인상 추진, 노동시간의 정상화, 통상임금 판결을 통한 기본급 비중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제를 역동적으로 결합하면서 청년실업 해결의 전향적 방안을 마련하는 정책혼합은 가능하며 가장 바람직하다. 이를 사회적 대화 복원의 종합 의제로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존중 사회에 걸맞은 비정규직 대책과 노사관계 개선은 사회적 대화에서 논란을 벌일 의제가 아니라 정부 추진과제에 가깝다.


노동계 주도로 합의 가능한 안부터 차근차근 진행하길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재계는 사회적 대화 필요성을 못 느끼는 상황으로 보인다. 노동계가 주도해 나갈 수밖에 없다.
법·제도 개선이라는 큰 과제가 놓여 있다. 지난 8개월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행정부가 노동문제를 밀어붙였다. 이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제도로 정착시키는 노동개혁이 필요하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일정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않으면 법·제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노동존중 사회라는 것이 대통령 개인의 요구가 아니라 촛불혁명 과정에서 제기됐던 사회의 요구라는 점을 인식하고 노동계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노동기본권이 보편적 국제규범을 따라갈 수 있도록 원칙을 잡아야 한다. 사회 불평등 구조가 큰 문제지만 노동 내부 격차도 그냥 놔두면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화됐다. 임금체계 개편과 연동해서 기업별로 고착화된 교섭구조를 바꾸는 문제, 양극화와 연계된 산별교섭을 촉진하는 제도와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미조직 노동자를 어떻게 지원하고 그들의 목소리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구현해 낼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사 협력이나 지원정책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사안을 사회적 대화 초기부터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산업안전 문제는 직장내 괴롭힘, 과로사, 화학물질로부터 노동자 권강권을 확보하는 문제로까지 다변화했다. 이런 이슈라면 노사가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제는 너무나 많다. 초기에 욕심을 내면 안 된다. 노사가 같이할 수 있는 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통해 서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그래야 이후 임금체계 개편 등 더 큰 사안으로 나아갈 수 있다. 노사 간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큰 안건을 사회적 대화라고 밀어붙이면 필연적으로 대화는 중단된다.


사회적 대화로 산별·지역단위 일자리 만들어야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무엇보다 사회적 대화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보건의료 노사처럼 산별단위나 서울시처럼 지역단위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게 가능할 것이다. 서울시 청년수당처럼 기본소득 형태의 청년수당을 사회적 합의를 거쳐 확대하면 좋을 것이다. 정부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약속했다. 이 역시 사회적 대화로 전반적인 합의를 하게 된다면 기업이 받아들이기 좀 더 수월할 것이다.

사회적 대화 의제로 노사를 넘어 원·하청이나 프랜차이즈 본사·가맹점 간 힘의 불균형 문제도 올려야 한다. 대기업·프랜차이즈 본사·하청기업·노동자를 사회적 대화로 묶어 상생방안을 마련해야 향후 최저임금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높이기 위해 맞벌이 부부에 대한 세금지원이나 세금감면 확대를 의제로 올렸으면 한다. 이렇게 하면 노동시장에 더 많은 여성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노동시장에 여성이 많이 들어와야 차별 개선도 가능할 것이다.

사회적 대화기구 형태는 좀 더 다차원적이어야 한다. 국가적인 차원을 비롯해 업종·지역·특정이슈별로 대화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국가적 의제는 노사정 대표가 참여해서 하면 되고, 업종·지역·특정이슈별 의제는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유연하게 대응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현재의 대화구조로는 비정규직 문제 풀기 어렵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 경제정책은 기업집단의 이윤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가 시작된다면 노동자 소득이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길 기대한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단축 문제도 논의돼야 할 주제다. 중소·영세 기업의 생존 문제가 거론된다. 기업활동과 관련한 시장질서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다. 대기업 이윤은 지나치게 높고, 하청업체 중소·영세 업체의 이윤은 대단히 낮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원·하청과 대기업·중소기업 사이에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

위에 언급한 두 가지는 사회적 대화와 함께 정부가 의지를 갖는다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의제들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1천200만명 이상의 국민이 비정규직이다. 전 국민의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이라는 얘기다. 국민의 70% 이상이 상시·지속업무의 정규직 전환에 찬성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에 앞서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가 있는 상태다. 비정규직 오남용은 노동시장의 대표적인 적폐다. 양대 노총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정규직이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고, 정규직의 반대로 비정규직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도 목도했다. 더욱이 노조 조직률은 10% 안팎이다. 비정규직의 경우는 더 낮아 2%에 불과하다. 양대 노총이 기존의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한다고 해도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 갈 대표성이 부족하다. 2000년대 초반 비정규직 권리 신장 입법을 위한 노동계의 활동과 파업을 지금은 볼 수 없다. 양대 노총과 경영계 논의와는 별도로 국민적 합의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 갈 대화기구가 필요하다.


일터혁신은 노사가 윈-윈할 수 있는 테마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사회적 대화 전체 주제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포함해 우리나라 노동기준을 어떻게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져갈 것인지 등에 대해 논의해 보면 좋겠지만, 경영계가 호응할 주제는 아니다.

경영계와 타협할 만한 주제로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 논의는 과잉됐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어떤 것은 5년 뒤, 어떤 것은 10년 뒤나 30년 뒤에 바뀌는데 마치 한순간에 모든 게 바뀌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것보다는 고전적인 주제인 ‘일터혁신’에 대해 논의해 보는 건 어떨까. 노사관계·인사관리·노동과정 등 일터혁신이 포괄하는 범위가 크다 보니 중요한 주제임에도 그간 논의가 확산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일터혁신의 핵심은 노동과정과 작업조직이다. 최근 일자리가 서비스업에서 많이 생기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업에서의 일터혁신을 개발해야 한다. 서비스업 일터혁신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적기 때문에, 그럴수록 사회적 대화를 통해 실험적인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노동과정이나 작업조직을 혁신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꿔 노동자들이 스마트하게 일하게 되면 노동자들은 노동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고, 경영계 입장에서는 생산성과 품질을 높일 수 있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테마인 셈이다. 일터혁신은 노사가 서로 ‘베스트 프랙틱스’를 찾는 과정이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 과정에서 갈등이 덜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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