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지난주 우리 언론의 가장 뜨거운 뉴스는 조선일보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관총으로 처형됐다던 북한 가수 ‘현송월’의 부활이었다.

몇몇 분들이 페이스북에 2013년 9월8일자 조선일보가 처형설을 보도했다고 하는데, 그날은 일요일이라 신문이 안 나오는 날이다. 조선일보가 현송월 처형을 보도한 날짜는 2013년 8월29일자다. 조선일보는 이날 6면 머리기사로 <김정은 옛 애인 등 10여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김정은 옛 애인’이라는 제목 아래엔 작은 제목으로 ‘보천보 전자악단 소속 가수 현송월’이라고 달았다. 조선일보는 기사 제목처럼 처형‘설’이 아니라 처형 자체를 기정사실로 보도했다. 기사의 두 번째 문장은 “가수 현송월과 은하수 관현악단장 문경진 등은 (…) 전격 처형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이처럼 단정적으로 ‘처형됐다’고 명시한 근거는 “중국 내 복수의 대북 소식통”이었다.

이 기사를 쓴 사람은 당시 베이징 특파원이던 안용현 기자다. 1999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편집부와 스포츠부·경제과학부를 거쳐 2003년부터 검찰청을 출입하다 2005년 정치부로 옮겼고, 2012년 베이징대학에서 연수하고 2013년부터 중국 특파원을 지냈다. 연수기간까지 합쳐도 1년 남짓 만에 희대의 단독보도를 한 셈이다. 안 기자는 지난해 11월 논설위원으로 옮겼다.

조선일보는 2013년 8월 단독보도에 이어 그해 12월엔 <“김정은 ‘포르노 추문’ 옛 애인 현송월 기관총으로 공개총살” … 국정원 확인>이라고 못 박았다. 이렇게 조선일보의 오보에 국가정보원도 동참했다.

사실 조선일보 오보는 이번에 처음 알려진 게 아니다. 오보한 지 1년도 안 돼 북한 조선중앙TV에 현송월이 등장했다. 조선일보는 2014년 5월 <음란물 제작 ‘총살說’ 北 현송월 생존>이라고 시치미 뚝 떼고 보도했다.

15일 현송월이 판문각에 나타나자 총살설을 보도했던 조선일보가 어떻게 보도할지 궁금했다. 조선일보는 다음날 3면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표단의 ‘실세’ 현송월, 시종 여유만만 … 北단장도 깍듯이 예우>라는 제목으로 큰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번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기관총 총살 오보 외에도 또 다른 중요한 오보에 물타기를 시도했다. 2013년 ‘김정은의 옛 애인’이라고 했던 말을 바꿔 “김정은의 옛 애인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썼다. 결국 2013년엔 확인도 되지 않을 걸 머리기사 제목에 박았다는 소리다. 왜 이번에 ‘확인되지 않았다’고 고쳐 썼을까. 계속 우기면 되는데. 어차피 아무도 확인할 수 없는데. 현송월이 40대로 김정은보다 10살쯤 더 많은 게 확인돼서 그런가?

기자가, 특히 속보경쟁에 시달리는 일간지 기자라면 누구나 오보를 낼 수 있다. 문제는 오보 이후 어떻게 나오느냐가 더 중요하다. 솔직하게 오보를 인정하는 게 더 낫다. 요즘 국민은 “신문에 났다”는 말 한마디로 논쟁을 끝내지 않는다. 아예 신문 자체를 보지도 않는다. 각 잡고 2면 바닥에 <정정보도>라고 명토 박지 않더라도 기사 본문에라도 오보를 인정하는 게 옳았다.

조선일보뿐만이 아니다. 기관총 처형설은 수많은 언론이 앞다퉈 보도했다. 어떤 언론도 오보에 사과하지 않았다. 2013년 조선일보의 단독보도는 기관총 처형과 포르노 촬영, 김정은 애인 등 당시 정권의 안보상업주의를 한껏 부풀리며 큰 재미를 봤다.

대북 보도에서 언론의 이런 태도는 언론산업 전체를 멍들게 한다. 계속 아니면 말고 식으로 보도하다가는 자멸하고 만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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